사람인가 돼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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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가 돼지인가?

정길생 수필가
(사)국제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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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생 수필가

(사)국제문인협회 회원 

 

 

“돼지의 심장을 이식받은 인간은 사람이요 돼지요?”

금년 초 미국 메릴랜드대학 의료진이 돼지의 심장을 인간에게 이식하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주변으로부터 자주 들은 질문이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심장이 아니라 이식받은 돼지의 심장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라 돼지로 보아야 하지 않으냐는 이야기다. 

질문을 하는 사람은 우스개로 묻는 것 같지만 나는 그 질문을 우스개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장기이식이 일반화될 미래사회에 있어서 인간의 비인간화를 경고하는 질문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장기를 이식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식할 장기가 있어야 한다. 현재는 뇌사자 등으로부터 기증받은 장기나 조직을 이용하고 있지만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증되는 장기의 수는 10%를 넘지 못한다. 그래서 장기 이식을 필요로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약도 없이 이식용 장기를 기다리다가 죽어가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처럼 턱없이 부족한 이식용 장기를 확보하기 위하여 과학자들은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실용화를 서두르고 있는 이식용 장기로는 원숭이나 돼지와 같은 이종 동물의 조직이나 장기, 사람의 줄기세포를 배양하여 만든 조직이나 장기, 그리고 기계와 전자장비를 결합하여 만든 인공장기 등을 들 수 있다. 

동물의 심장을 사람에게 이식하려는 시도는 사십여 년 전부터 있었지만 그 간의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실패의 대표적 원인은 이종 동물의 조직에 대한 인체의 면역학적 기부반응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성공을 거둔 메릴랜드대학의 의료진은 이식용 심장을 제공할 돼지의 유전자를 조작함으로써 면역학적 거부반응을 극복했다. 

그들은 유전자가위 기술을 응용하여 돼지 심장의 크기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제거하여 심장의 크기를 사람의 몸에 맞도록 조절했다. 또 돼지 심장을 사람에게 이식했을 때 인체의 거부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돼지의 유전자도 제거했다. 그 대신 사람의 면역체계를 구성하는 인체 유전자의 일부를 돼지 몸에 심어주었다. 그러므로 이번에 이식한 돼지의 심장은 유전적으로 순수한 돼지의 심장이 아니라 사람의 심장과 비슷한 크기와 사람의 면역체계에 친화성을 갖도록 사전에 유전자가 조작된 실험용 돼지에게 얻어진 심장이었다. 그래서 이식된 돼지의 심장이 인체의 거부반응을 피하고 인체조직에 부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심장 이식을 담당했던 메릴랜드대학의 의료진에 의하면 환자는 심장 이식 후 육십여 일 만에 사망했다고 한다. 아직 공식발표가 없어 사망의 구체적인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이식 후 두 달이나 생존한 사실로 보아 이종 간 장기이식의 핵심적 난제인 인체의 초기 급성 면역학적 거부반응은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이종 장기이식에 수반되는 대표적 난제를 극복한 이번의 연구 성과는 앞으로 심장 외에도 신장, 췌장, 간장, 폐, 자궁 및 피부 등 그의 모든 장기와 조직에 대한 이종 간 이식의 길을 트게 될 것이다. 나아가 사람의 줄기세포를 배양하여 만든 조직이나 기관은 물론 기계와 전자장비로 만들어진 각종 인공장기의 생산과 이식의 실용화도 앞당길 전망이다. 

장기이식이 일반화되면 기능이 약하거나 병든 장기는 기능이 더욱 강화된 장기로 교체할 수 있게 되어 인간의 수명은 지금보다 늘어날 것이다. 그처럼 생로병사에 관한 자연의 섭리를 뛰어넘어 인간 수명의 인위적 연장이 가능한 미래사회에 있어서 인간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오래 살고 싶다는 인간의 원초적 욕구는 어느 정도 충족될 것이다. 그러나 그에 수반되는 부작용 또한 만만찮을 전망이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 출생률은 낮아지기 마련이다. 생산인구는 급속도로 줄어들고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다. 그 결과 사회의 복지체계는 무너지고 거리에 나앉는 잉여인간만 증가하는 우울한 세상이 될 것이다. 

이식용 장기의 개발과 보급이 거대한 다국적 기업에 의해 주도되면서 장기의 다양화와 고급화가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그에 따라 사회는 높은 가격으로 고급 장기를 이식하여 건강과 장수를 누리는 부유층과 그것이 불가능한 빈곤층으로 양분될 것이다. 의료비의 유무에 따른 사회의 양극화는 날로 심화되고 죽음 앞에는 만인이 평등하다는 패러다임도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말 것이다. 

또 각종 이식용 장기가 자동차의 부품처럼 공개적으로 거래되는 일이 일상화되면서 사람의 생명도 기계의 부품처럼 생각하는 인명 경시 풍조가 만연하게 될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장기이식이 인간의 정체성에 미칠 영향이다. 기능과 내구성이 뛰어난 기계와 전자장비가 결합된 인공장기를 이식받은 경우, 그 인간은 기계인가 사람인가? 이종 동물의 장기와 전자장비 기반 인공장기를 동시에 이식받은 인간은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그는 사람인가 동물인가 아니면 기계인가?

결국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인간은 더 이상 순수한 생물학적 존재가 아니라 이종 동물이나 기계와 융합된 혼종(混種)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사람도 아니고 기계도 아닌, 유기체도 아니고 무기체도 아닌 애매한 자아상을 갖게 될 것이다. 그처럼 인간의 자아상 자체가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조작되지 않은 순수한 인간들도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zwell, 1948~)은 2045년경이 되면 우리 사회는 현생인류가 아닌 기계인간, 즉 인간체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각종 인공장치와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고도의 인공지능을 장착한 포스트휴먼(posthuman)에 의해 새로운 문명이 창조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리고 그러한 포스트휴먼의 등장은 인류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인류 진화의 한 과정일 뿐이라고 했다. 즉, 현생 인류는 포스트휴먼이라는 미래인간을 인류의 진화가 초래한 필연적 결과물로 보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처럼 비인간화를 수반하는 인위적 진화는 포스트휴먼을 중심으로 보면 진화이겠지만 현생 인류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것은 진화가 아니라 종말로 가는 길목이 될 것이다. 현생 인류는 지적 능력이 크게 앞선 포스트휴먼과의 경쟁에서 패배하여 소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행복을 증진할 목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각종 생물 공학적 첨단기술들이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이 세상을 포스트휴먼에게 넘겨주고 현생 인류는 종말로 이끄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인류학 등 인문사회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 중에는 인간 생명의 인위적 조작을 목적으로 하는 각종 생명공학기술의 급속한 발달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들의 현생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첨단 생물공학의 연구에 관한 한 엄격한 국제적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나도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제는 우리도 생명공학이 가져다줄 경이로운 순기능에만 현혹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초래할 가공할 역기능에 대해서도 깊은 성찰과 함께 적절한 대책을 수립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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