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은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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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민족

이웅재<수필가, 수필문학 상임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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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재<수필가, 수필문학 상임편집위원장>

 

주어진 축복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사람들. 그레 바로 우리 한민족(韓民族)이 아닐까 한다. 축복을 누리기는커녕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던가 하면, IMF라는 엉뚱한 손님마저 맞아야 했던 우리들이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자, 6·25도 IMF도 우리 민족 반만년의 역사를 무너뜨리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반만년’은 띄어쓰지도 않는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그렇게 시간상으로도 한 단어로 굳어져 버린 것이니 얼마나 대한하가? 그러니 이 글의 첫머리에서 말한 ‘주어진 축복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말은 단연코 취소할 수밖에 없겠다. 해서 이 글의 제목은 ‘축복받은 민족’이 되었다. 


우리 민족은 추하추도의 4계절이 있는 한반도를 터전으로 살아왔다. 여름만 있는 나라, 겨울만 있는 나라, 생각만 하여도 온몸이 꽁꽁 얼어붙든가 숨이 헉헉 막히지 않는가?

어쩌다 한번 가볼 때에는 좋겠지만 사시장철 덥기만 한 나라에 가보라. 장사꾼들의 솜씨는 그런 나라에서도 밍크코트를 팔고 있다지만 말이다. 방마다 에어콘 한껏 틀어놓고 친척이며 친구들을 잔뜩 불러다 놓고 밍크코트를 입고 으스댄다나 어쩐다나. 

반대로 일 년 내내 얼음이 녹지 않는 북극지방에서도 냉장고를 팔아먹은 사람이 있다니 놀랄 만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억지 상술(商術)을 부리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 계절마다 변하는 산천초목. 항상 새로운 자연을 대하며 살 수 있는 행복을 왜 우리는 이제껏 모른 체해온 것일까?

60년대 이전, 우리가 가난했을 때에는 추위가 ‘웬쑤’였다. 먹을 것, 입을 것이 항상 부족했던 것이다. 하지만, 하늘은 그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마련하고 있었다. 추운 지방에서 나는 농작물은 무척 차지다. 기후의 영향으로 농작물의 밀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의 경우, 6·25를 겪으면서 ‘알락미’로 지은 밥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다. 배고픈 입에도 그 밥은 맛이 ‘별로’였다. 차지지가 못하고 푸석푸석했던 것이다. 새로 밥을 지어 놓아도 먹다가 남은 밥을 물에 빨아놓은 것 같던 알락미로 지은 밥. 나중에 알고 보니 ‘알락미’는 ‘안남미’가 음이 변한 이름이었다. 안남미(安南米), 지금의 베트남 쌀이었다. ‘안남’은 ‘베트남’의 한자명이었던 것이다. 베트남의 중부 이남은 열대성 기후이다. 거기서 생산되는 쌀이 차질 수가 없은 이유이다. 

같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쌀도 추운 지방에서 생산될수록 찰기가 더해진다. 물론 품종에 따른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호남미보다는 경기미가 상품이요, 경기미 중에서도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차진 기운이 많아진다. 철원미를 먹어본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쉽게 알아챌 수 있으리라. 

추운 지방, 그만큼 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살아야 한다.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의 한 구절처럼 인고의 덩어리로 만들어진 온갖 곡식들, 거기엔 ‘찰기’가 없을 수가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한국인들의 심신(心身)은 그렇게 끈질긴 ‘찰기’로 똘똘 뭉쳐져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그런 추위를 겪으면서 우리는 ‘끈기’를 키워왔다. 끈기 있게 기다리면 온갖 꽃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봄이 다가온다. 추위에 떨던 만물이 소생(蘇生)하는 것이다. 겨우내 죽은 것 같았던 대지가 살아난다. 그러나 그런 봄은 오래가지 않으니, 곧 찾아올 푹푹 찌는 여름을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여름이 불필요한 계절은 아니다. 만물을 성숙시키는 것이 여름인 때문이다. 여름만 계속되는 나라하고는 다르다. 애써 가꾸던 농작물들은 그 뜨거운 여름 햇발에 온전하게 영글어 가는 계절인 것이니, 참고 기다릴 일이다. 

그러면 머지않아 수확의 계절, 가을이 찾아온다. 벼이삭도 영글고, 대추, 감, 밤들도 익어서 수확을 할 수 있는 때가 된다는 말이다. 온 산과 들에는 형형색색의 단풍이 곱게 물드는 계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곧 또다시 겨울이 찾아올 것이니, 미리미리 그에 대한 대비를 하여야 한다. 

네 계절을 고루 갖추고 있는 나라, 거기서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은 참으로 복된 민족이다. 


게댜가 우리나라는 반도국이다. 그야말로 축복 중의 축복이다. 우리는 이제껏 ‘반도’라는 점을 대륙과 해양의 가운데 위치함으로써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아왔다는 단점만을 두드러지게 인식하면서 살아왔다. 한지만, 이제는 생각을 바꿀 때가 되었다. 반도국이니까 대륙과 해양의 양쪽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문제는 경제적, 군사적 힘이겠는데, 지금 우리나라는 과거와는 달리 무한한 발전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동북아신문(http://www.dbanews.com)’의 2009. 12. 10.자 기사를 보자.

“지난 8월, 건국 60주년을 앞두고 우리나라 각계각층의 석학 60명이 … 연속강연을 한 적이 있다. 그 첫 번째 연사는 … 이어령 교수였다. 그날 그는 … ‘우리말에 내일이라는 순우리말은 없어도 모레, 글피라는 순우리말은 있다. 당장 나가오는 가까운 미래가 아니라 먼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위대한 민족’이라는 말로 청중들은 감동시켰다.”

그렇다. 이제는 우리가 세계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그 기사에서는 ‘한국의 반도성 회복에 중국, 일본의 공존과 번영과 평화’가 달려 있다고 했다. ‘반도 국가라는 것은 한계나 약점이 아니라 축복이고 장점이고 기회’라는 것이다. 

자연을 어떻게 이용하는가는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달라진다. 시련을 영광으로 바꿀 줄을 알아야 한다. 우리 민족의 특장점이라고 하던 ‘은근과 끈기’를 발휘할 때가 왔다. 

우리는 항상, 축복받은 민족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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