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와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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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순(수필가 / 국제문인협회 회원)

 

꼬박 이틀을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맸다. 평탄한 길을 걸어가다 갑자기 절벽 앞에 선 기분이랄까. 앞으로 내디딜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견디다 못한 남편에게 격한 감정을 폭포수처럼 쏟아부었다. 하늘같이 의지한 남편에게 따뜻한 위로의 햇살을 기대했다. 그런데 의외로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를 맞는 것처럼 남편은 시어머니를 이해하라며 시어머니 편을 들었다.
내가 그토록 듣고 싶은 말, “시어머니의 요구에 많이 힘들지 않는냐?”는 위로의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남편의 태도가 더 힘들었다. 온갖 심사가 끝임없이 피어오른다. 후유 하고 탄식이 수시로 입 밖으로 새어 나온다.
며칠 전 시어머니를 모시고 외출하는 차 안에서 시어머니는 우리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그동안 우리 부부가 저축해둔 얼마의 돈 전부를 자신이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달라고 했다. 시어머니가 돈을 허투루 쓰는 분이 아니기에 꼭 필요한 데 쓰실 것은 짐작할 수 있었으나 그 돈은 우리 나름대로 용도가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의견을 묻는 것이 아니라 명령하듯이 달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동안 평생 가족을 위해 봉사하고 살았으니 그만큼은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하셨다. 물론 맞는 말씀이다. 그래도 너무한다 싶었다. 아들 장가보낼 나이도 다가오고 무엇보다 남편 은퇴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머니의 돈의 사용처가 짐작이 갔다. 최근 건강에 어려움을 겪은 당신의 딸에게 위로 차 약간의 금액을 주고 싶다는 뜻을 며칠 전에 비치셨다. 우리 부부도 수긍은 했으나 그 위로금이 우리의 저축금 전액이 될 줄은 몰랐다. 시어머니의 요구가 부당하다는 이유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머릿속이 점점 엉킨 실타래로 복잡해진다.
대답을 재촉하는 어머니의 안색은 앞을 가로막는데 내 눈치를 살피지만 어머니의 뜻을 따르고 싶어 하는 남편의 무언의 메시지가 내 뒤통수를 따라다닌다. 한 지붕 아래 사는 세 사람 사이에 오가는 감정의 줄다리가 팽팽하다. 지난 30년 함께 살아온 경험으로 볼 때 어머니는 한번 마음먹으면 바꾸실 분이 아니다. 남매를 홀로 억척스럽게 키워낸 강단이다. 점점 약해지는 내 마음이 시간의 밧줄을 올라타고 감정의 여울에 흔들린다.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조바심 속에 잠시 대립의 감정을 내려놓고 내면으로 침잠해본다. 내 생각의 뿌리를 더듬어 내려가 본다. 금전에 집착하는 욕심인가? 미래의 안락한 삶의 보장을 놓칠 수 있다는 불안인가?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인가? 내 생각은 미래에도 흔들림이 없을 정당한 것인가?
어머니의 생각의 골도 따라가 본다. 사랑이다. 자식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다. 생계를 마련하느라 타향을 돌며 갓난쟁이 딸을 친정에 떼어 놓아야 했던 지난날의 아픔이 이제는 미안함으로 사무치는 맘이다. 점점 수긍이 간다.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고자 숲으로 갔다. 내가 어떤 마음과 태도를 가져야 할지, 내 속에 끓어오르는 뜨거운 감정의 소용돌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문득 눈을 떠서 바라보는 앞쪽에 하얀 꽃이 보였다. 낙엽을 비집고 나온 이파리에 꽃대가 쭉 올라와서 작은 꽃송이가 조롱조롱 달려있다. 키 큰 나무 아래 숨은 듯 소리 없이 청초하게 피어있는 꽃. 그 꽃은 나를 향해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다. 순간 내 우울한 마음을 밝혀주는 빛줄기처럼 눈부시게 환해졌다.
깨닮음이 왔다. 이 꽃이 이 조용한 곳에 잠시 피우고 가듯이 나도 이 우주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 나의 목숨뿐만 아니라 지금의 내 기분, 내 감정도 잠깐이라는 것. 그리고 내 생명과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은 이곳에 핀 한 송이의 꽃과 같이 선물이라는 것, 숲속으로 골고루 스며드는 햇살이, 나뭇잎을 흔드는 한 줄기 바람이, 내 삶에 주어진 모든 환경이 소중한 선물로 다가왔다.  
선물과 같은 삶을 받아 잠시 누리는 것이기에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 혹독한 감정의 여울이 차분이 가라앉고 있었다. 숲과 꽃도 기도 사이에서 별처럼 떠오르는 깨달음이 감사했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마음에 아직은 영글지 않은, 이제 막 잉태되고 있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말로 내뱉어버렸다. “어머니 원하시는 대로 하시게 해요.”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응, 그래?… 고마워.” 굳어 있던 남편의 표정이 풀어진다. 다시 번복하는 마음이 생길까 봐 얼른 남편 앞을 떠나며 내가 실수한 건 아닌지 자문해본다. 그래도 맘이 편하다. 이틀 만에 찾아온 평안이다.
나무의 연륜이 나이테에 남겨지듯 사람은 살아가는 삶의 자취를 남긴다. 그가 걸어간 모습을 뒤에 남겨둔다. 그것은 아름다운 자취로 남기도 하고 좋지 못한 흔적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최근 일어난 나의 모습은 어떤 자취로 남게 될까.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역시 마음이 넓고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내 마음 깊숙이 얼마나 많은 갈등의 골을 건너와서 겨우 내린 결정이었는지를. 욕심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마음으로 얼마나 내려놓기를 반복했는지를. 문득문득 어리석은 결정은 아니었는지 후회의 마음이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먼 훗날 뒤돌아볼 때 잘한 선택이었다고 빙그레 미소 지을 수 있는 그런 자취로 남겨지기를 소원하다. 지나온 날들에서 내 욕심을 따라 행한 결정으로 지금도 낯이 뜨거워지는 아쉬운 흔적을 남긴 적도 많다.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흔적들이다. 그것은 모두 충동적으로 이기적인 마음을 따라 행한 일들이다.
이 일이 있고 난 뒤에 나 자신의 행동과 태도에 좀 더 신중하게 되었다. 특히 선택과 결정의 순간에 이기심과 욕심을 따르지 않는지 자주 반문해본다.
앞으로 일어가는 인생 여정에는 충동적인 감정의 얕은 길을 따르기보다 내면에 울리는 깊은 소리가 말해주는 길,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가치들이 이정표가 되어 주는 길, 이미 선물 같은 삶을 살고 간 사람들이 자취를 남겨둔 그 길을 따라가기를 소원한다.
“꽃의 향기는 10리를 가지만 사람의 덕(德)은 만 년동안 풍긴다(花香十里行, 人德萬年薰)”는 말이 있다. 멀리 가도 오래 기억되는 사람의 향기란 어떤 것일까.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 보는 것, 상대방의 아픔을 같이 아파할 수 있는 넓은 마음, 때때로 이해(利害)가 얽힌 일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에 내 욕심이 아닌 사랑의 선택을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삶의 종점에 이르러서 뒤돌아볼 때 비록 화려하고 찬란한 업적을 이룬 길은 아닐지라도 욕심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순간마다 사랑의 자취를 남긴 그런 길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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