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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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만들기

수필가 정 길 생(전 건국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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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정 길 생(전 건국대학교 총장)

 

 

이곳 S 실버타운에서 가장 편한 곳은 공중 목욕탕이다. 그곳은 언제 가도 우리 노인네들에게 몸과 마음의 안식을 준다. 또 그곳에 가면 체면과 자존심 같은 것들은 모두 벗어던지고 벌거숭이가 되어 서로 진솔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다.
노인들이 목욕탕에서 나누는 대화 중 가장 자주 듣는 화제는 자녀들에 관한 이야기다. 매일 안부전화를 하는 자녀들의 효심을 자랑하는 노인도 더러는 있다. 그러나 그런 노인들과는 달리 당신에 대한 자녀들의 무관심을 섭섭해하는 노인들이 더 많다.
지난 주말 목욕탕에서 있었던 일이다. 평소 나와는 친숙한 어느 노인이 상기된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내 옆에 털썩 주저앉자마자 노여움이 짙게 깔린 목소리로 미국에 살고 있는 아들과 며느리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내가 알기로는 팔십 대 후반의 그 노인은 일제 강점기에 서울의 어느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물려받은 유산은 지독한 가난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억척같은 노력으로 해방과 6·25 사변 전후의 극심한 사회적 혼란과 가난을 극복했다. 그리고 뒤이은 산업화의 과정을 통해 상당한 수준의 부를 축적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그때부터 그는 효성을 다해 부모심을 모셨고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했다.
대학을 졸업한 아들은 미국으로 유학까지 보냈다. 학비는 물론 생활비도 넉넉히 보내주었다. 다행히 아들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에 유학하고 있던 한국 여성과 결혼도 했다. 노인은 큰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 아들 내외가 취업을 할 때까지 결혼 비용은 물론 생활비와 주택 구입비까지도 망설임 없이 보내주었다.
그런데 아들과 며느리가 취업을 한 다음부터는 하루가 멀다하고 걸려오던 전화가 점점 뜸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 노인인 이곳 실버타운에 입주한 다음부터는 전화 오는 횟수가 두 달에 한 번도 채 안될 정도로 줄었다.
지난 주말 목욕탕에서 내가 그 노인을 만나기 전날은 마침 그 노인의 생신이었다. 이번에는 전화가 오겠지 하고 노인은 며칠 전부터 아들의 전화를 기다렸다. 그러나 당일 밤 자정이 지나도록 아들은 물론 며느리 한테서도 끝내 전화는 오지 않았다. 노인은 너무 섭섭했다. 돈을 보내달라고 하루가 멀다고 전화를 하던 아들 내외가 살만하게 되니 그간의 고마움은 물론이요 이제는 자기의 존재까지고 잊어버렸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생각이 그에 이르자 그동안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아들 내외의 이런저런 불효 때문에 서운했던 갖가지 기억들이 연이어 고개를 들면서 그날 밤 노인은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노인이 겪고 있는 고뇌는 오늘을 사는 노인들의 대부분이 경험했거나 경험하고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듣고 보니 그 아픔이 더욱 실감 있게 다가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 자녀들의 불효 문제는 딱히 그들만을 나무랄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이루어낸 한강의 기적이라는 놀라운 경제성장은 우리 사회에 핵가족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탄생시켰다. 핵가족은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대가족 문화를 와해시키고 핵가족 문화라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문화를 보편화시켰다. 그렇게 정착된 핵가족 문화는 우리네 삶의 모든 영역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우리 자녀들의 인성교육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영향이 컸다.
핵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난 우리 자녀들은 처음부터 마치 한 가정의 상전처럼 대접만 받으며 자랐다.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를 획득한 부모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었다. 그러면서도 부모에 대한 효도나 타인에 대한 배려 등과 같은 소중한 인성을 가르칠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그 결과 우리의 자녀들은 무엇을 받아도 당연히 받을 것을 받았다고 생각할 뿐 감사할 줄은 모르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그들의 그러한 성장 배경을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 자녀들의 부모에 대한 무관심과 불효는 인성교육의 중요성은 망각한 채 경제적 부의 축적을 지고의 가치로 여겼던 우리 세대들의 우매함이 만들어낸 결과물인 셈이다. 불효 문제에 관한 한 우리 자녀들만을 탓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에 와서 부모인 우리가 인생을 다시 살 수도 없고, 이미 중년기에 접어든 우리 자녀들에게 인성교육을 새로 시킬 방법도 마땅치 않다. 그러므로 현시점에서 우리 자녀들의 불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은 방법은 우리 스스로가 효도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꾸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어 보인다.
가부장적 대가족 시대에 형성된 우리의 효도관, 즉 자식은 어떠한 경우에도 부모에게 무조건 복종하며 효성을 다해야 한다는 식의 낡은 고정관념에서 우선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우리와는 달리 핵가족이라는 독특한 환경에서 태어나 그 속에서 성장한 우리 자녀들의 생각과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자녀들의 불효를 이야기할 때에는 언제나 그들을 위해 우리가 쏟은 노고와 희생을 강조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건네준 기쁨과 보람도 결코 적지 않다. 그들의 태어남 그 자체가 우리에게는 경이로운 축복이었고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도 큰 기쁨이었다. 그들의 탄생은 우리의 가슴에 사랑의 불꽃을 지폈고,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크고 작은 기쁨과 보람을 선사했다. 그들에게 의탁하는 우리의 소망도 상당 부분 이루어주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런 손자·손녀를 우리에게 안겨준 사람도 그들이다. 그런 점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자녀들의 성장과 교육을 위해 쏟은 노고와 희생에 대한 보답은 이미 충분히 받은 셈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자녀들에 대한 더 이상의 지나친 욕심이나 서로 간의 소통 부족에서 오는 섭섭함 같은 감정은 모두 털어 버려야 한다. 섭섭한 마음이 고개를 들 때에는 그들이 우리에게 안겨준 수많은 기쁨과 보람을 떠올리며 애써 그 섭섭한 감정을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매사를 우리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자녀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우리 자녀들에게 몸소 보여 주어야 한다.
구순을 바라보는 수구적 꼰대인 우리가 생각과 태도를 그렇게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애써 스스로를 독려하며 우리 자신을 그렇게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부모 자식 간의 간극을 좁혀 부모에 대한 우리 자녀들의 효심을 일깨우고 또 부모인 우리도 자녀일로 속을 덜 끓이며 노후를 마음 편히 보낼 수 있게 하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문예’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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