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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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자라

이상유<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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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유<시인·수필가>

 

 

며칠 전 아내와 칠성시장에 갔다.
칠성시장은 서문시장 다음으로 대구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으로 없는 물건이 없다고 할 정도로 소문난 곳이다. 지하철 칠성시장역에서 내려 계단을 오를 때부터 시큼 짭짤하면서도 구수한 장터 냄새가 풍겨왔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도로 가장자리에 길에 늘어선 좌판과 그 위에 쌓인 갖가지 물건들이 우리를 반긴다. “사가이세이!”하고 아주머니들이 던지는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어린 시절 고향 장터의 낭만을 되살아나게 한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감 어린 맛이다.
아내와 함께 여기저기 시장 구경을 하다가 민물고기를 파는 가게 앞에서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붉은색의 커다란 고무대야 여러 개가 길바닥에 놓여 있었고 그 속에는 잉어며 붕어, 가물치, 메기, 미꾸라지 등 여러 종류의 민물고기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혹여, 물고기들이 죽을까 봐 설치한 산소 공급기의 호스를 통해 공기 방울이 뽀글뽀글 일고 있었다. 물고기가 담긴 옆의 또 한 고무대야 속에는 커다란 자라 몇 마리가 엉금엉금 기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자라, 자라의 누르스름하고 넒적한 등 위로 어머니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때 나는 스무살로 펄펄 뛰는 아마추어 권투선수였다.
대학 입시에 떨어지고 마음 둘 곳이 없어 몇 달간 방황하다가 젊은 혈기로 시작한 운동이 권투였다.
지금의 대구 남문시장 건너편 남산동 언덕배기에 ‘동양권투구락부’라는 체육관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권투를 배우고 챔피언의 꿈을 키우며 내 인생의 가장 젊은 한때를 보냈다.
70년대 중반이던 그 당시 권투의 인기는 참으로 대단했다. 유제두, 홍수환, 염동균 선수 등이 세계 챔피언이 되어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가난하고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은 오직 주먹 하나로 돈과 명예를 거머쥘 수 있다는 창대한 꿈을 품고 너도나도 권투체육관의 문을 두드렸다.
또 당시는 ‘하면 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한창 경제발전에 열을 올리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었다. 모두가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무엇이든 열심히 노력하면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던 때였다.
세계 챔피언의 탄생에 국민들은 열광했다. 권투는 오래된 가난을 이겨 내겠다는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주고 마음을 한곳으로 모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텔레비전도 귀하던 시절, 권투 중계방송이 있는 날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평상에 둘러앉아 우리 선수를 응원했고, 이튿날 아침 뿌듯한 마음으로 일터로 나가 열심히 일했다. “한강의 기적은 주먹에서 나왔다.”라고 할 만했다.
경기를 앞두고 정신없이 연습에 몰두하고 있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큰 자라 한 마리를 구해 오셨다. 마침 이웃에 사는 친척 아저씨의 밤낚시에 걸려든 놈을 얻어 왔다고 했다. 힘쓰는 사람에게는 자라의 생피가 제일 좋다는 말을 누구에게 들었다고 하시면서.
자라를 앞에 놓고 잠시 기도하듯 눈을 감았다 뜬 어머니는 예리한 칼로 자라의 목을 찔렀다. 그리고 한 숟가락 정도 나오는 불그스레한 자라 피를 받아 나에게 먹으라고 권했다. 오로지 경기의 승부에만 집착해 있던 나는 두말없이 그것을 받아먹었다. 그 여름 큼직한 자라 몇 마리가 나를 위해 희생되었고, 어머니의 정성 덕분으로 그해 나는 이름 있는 몇몇 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어린 시절, 내가 친구들과 어울려 강이나 연못에 나가 어쩌다 자라를 잡아 오면 어머니는 용왕님이 노하신다고 하면서 다시는 잡지 말라고 나무라셨다. 그리고 잡아 온 자라를 다시 강에다 놓아주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라가 용왕님이 아끼는 신성한 동물이며 절대 해코지하거나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되는 영물로 생각했다.
그 시절 나는, 어머니가 이른 새벽에 몸을 단정히 하고 홀로 강가로 나가 무언가를 향해 두 손은 모아 빌면서 허리 숙여 절하던 모습을 가끔 보았다.
우리가 살던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사람들이 ‘덤’이라고 부르던 청석투성이의 큰 산이 하나 있었다.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던 산이 둘로 쪼개져 하나는 흔적도 없이 물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절반만 남은 깎아지른 듯한 벼랑이 있는 산이었다. 그 산 아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강물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른 새벽, 비늘처럼 일렁이고 있는 그 강물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그토록 기원했을까? 아마도 그 깊은 강물 속에는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어머니만의 어떤 믿음의 세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어머니의 이생은 물론 내생의 삶도 주관하는 용왕님이 살고 있었고, 거북이나 자라와 같은 물속의 장군들이 용왕님을 호위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힘든 세상살이를 이겨내기 위해, 또 언젠가는 다가올 내세의 평안을 위해, 오랫동안 몸과 마음을 가다듬으며 용왕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자식을 위해, 그토록 소중하게 지켜 오던 오랜 믿음의 세계마저도 저버린 채 용왕님의 호위무사인 자라의 목을 칼로 찔렀다.
세상의 어떤 것도 지식 위에는 존재할 수 없다는 어머니의 숭고한 사랑.
나는 젊은 한때의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어머니의 믿음과 내세의 행복마저 빼앗아 버린 불효자가 되고 말았다.
고무대야 안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방생용’자라 몇 마리를 가슴에 담았다. 그리고 언제 좋은 날은 잡아, 오랫동안 가보지 못한 ‘덤’이 있는 고향의 그 강을 찾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깊은 강 용왕님을 향해 힘껏 헤엄쳐 가는 자라를 바라보면서 오래된 나의 불효를 용서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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