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미성년의 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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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미성년의 밤(4)

박진경<일러스트, 웹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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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경<일러스트, 웹툰 작가>

 

 

“처음 술 먹은 거지?”
“응.”
“근데도 토할 정도로 마셨다고?”
승호가 다시 한 번 나를 힐끔 쳐다봤다. 나는 변명처럼 들릴 말을 주절거릴 수밖에 없었다.
“말렸는데… 너무 급하게 먹더라고.”
“솔직히 말씀하세요. 얘랑 무순 관계예요?”
“…내가 오늘 얘 술 셔틀이야.”
“예?”
“술심부름 용도로 편의점 앞에서 다짜고짜 잡혔어.”
“그래서 거절하면 될 걸 굳이 고딩 여자 애 술심부름 할 겸 해서 같이 마신 거예요? 애가 꽐라가 되도록?”
“나 꽐라 아니야.”
“응, 너 꽐라야.”
“내가 먹고 싶어서 내 의지로 마신 거야. 울 언니한테 뭐라고 하지 마.”
나는 한숨을 쉬며 승호에게 말했다.
“날 탓하고 싶은 맘은 알겠고, 나도 내가 한 행동이 지탄받을 만한 일이란 걸 자각하고 있어. 하지만 너도 알잖아. 그동안 민희가 얼마나 성실하게 부모님 시키는 대로만 해 왔는지. 민희가 노는 애 티가 팍팍 나는 애였다면 나도 당연히 술 셔틀 거절했을 거야. 근데 어딜 봐도 모범생인 애가 운 얼굴로 술 먹고 싶다고 하는데 당연히 사연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겠어? 막말로, 내가 거절하고 가 버리면 얘가 극단적인 선택이라도 하게 될지 어떻게 알아? 내가 같이 술 먹어주고 그랬으니 얘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을 수 있었지, 안 그랬으면 첨 보는 어른한테 이런 저런 얘기 했겠어? 얘가 남한테 피해 줄 정도로 큰 일탈을 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술 구해서 혼자 먹다 수습 안 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고, 나도 너네 나이 때 아빠한테 술 배운 일도 있고 해서 같이 먹었어.
나쁜 어른이라는 소리 들을 각오는 하고 벌인 일이지만 적어도 아무 생각 없이 나쁜 의도로만 저지른 건 아냐.“
“그래도 조금은 자제시켜주지 그러셨어요.”
기세가 한풀 꺾인 말투로 승호가 말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한동안 침묵했다. 그러다 민희가 가글액에 사례가 걸려서 요란하게 기침을 했고, 나는 걱정스런 눈을 하고 민희의 등을 두드려 주는 승호를 보면서 적어도 승호 쪽에선 민희를 단순한 급우로 생각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정신없이 콜록거리는 민희를 가운데 두고, 나는 승호에게만 들리도록 소곤거렸다.
“너 민희 좋아하지?”
승호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가 이내 새빨개졌다.
“뭐라는 거예요!”
“대충 아무렇게나 떠본 건데 반응 보니까 알 만하네.”
“아 뭐야 진짜!”
승호가 민희의 얼굴을 두드려 주다 말고 벌떡 일어나 등을 돌렸다. 빨개진 얼굴이 수습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게 너무 귀여워서 나는 소리 내어 웃어 버렸다.
“혹시 그런 거야? 첨엔 라이벌이었다가 점차 의식하게 돼서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아, 아줌마! 좀 그만 하라고요!”
“하하… 미안해. 내가 넘 짓궂었지.”
“둘이 무슨 얘기… 콜록… 하는 거야?
“응, 비밀이야.”
승호가 갑자기 민희의 팔을 덥석 잡았다.
“민희야, 가자. 이 아줌마 위험한 사람 같아.”
“날 아줌마로 부르고 매도해? 비밀 지켜 줄랬더니… 민희야, 승호는 사실…….”
“으아아아! 그만, 그만!”
“언니, 승호가 뭐요?”
“응, 나중에 승호한테 직접 들어.”
나의 말에 승호는 혼이 빠진 얼굴로 십년감수한 듯 한숨을 쉬었다.
“승호야.”
“네.”
“아줌마는 말야… 요 앞 배라에서 파는 민트초코가 먹고 싶네.”
승호가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보고 나는 다시 한 번 웃음을 참았다.
“농담이고, 얘 누가 데려다 줄까?”
“언니, 저 집에 들어간다고 말한 적 없는데요.”
이제 진짜 어른 노릇을 해야 할 때가 왔다. 나는 설득을 빙자해 다시 민희를 공부 지옥으로 밀어 넣을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다.
“민희야, 이대로 가출하고 길바닥 생활하는 게 어떤 의민지 모를 정도로 어리진 않지?”
“그래도 당장 들어가긴 싫어요. 언니, 며칠만 재워 주세요.”
“음… 이렇게 하지 않을래? 굿즈들 다시 모으자. 그리고 언니 원룸에 갖다 놔. 대신 오늘 집에 들어가고.”
민희가 망설이고 있는데 민희의 전화가 울렸다. 액정을 보니 발신인이 엄마였다. 옆에서 승호가 말했다.
“전화 받아야지.”
“안 받을 거야.”
“너 대체 어쩌려고…….”
“독서실에서 나 안 왔다고 엄마한테 전화한 거 같은데 받아서 뭐라 그래?”
“그런 거면 내가 수습해 줄게.”
나는 민희에게서 전화기를 넘겨받아 수신 버튼을 눌렀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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