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미성년의 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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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미성년의 밤(2)

박진경(일러스트, 웹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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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경(일러스트, 웹툰 작가)

 

 

 

“난 최근엔 계속 야근하느라 집에 들어오면서 씻고 자기 바빴거든. 그래서 드라마는 죄다 놓쳤어. 드라마 이름이 뭐야?”
“오후 정원이요.”
“ 아, 그거 우리 과 여직원들이 재밌다고 난리던데.”
“네, 재밌어요. 진짜루요.”
“한 번 봐야겠네.”
“꼭 보세요. 안 보시면 후회해요.”
“알았어, 알았어, 이제 먹을까?”
민희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나를 따라 조심스레 눈앞의 잔을 들어 올렸다.
“짠 하자.”
“넵!”
민희는 잔을 세게 부딪치고는 어디서 본 건 있었는지 고개를 돌리고 호기롭게 소맥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다 비울 것 같은 기세로 시작해선 반 정도만 먹고 테이블에 도로 내려놓았다.
“솔직히 맛없지?”
“네… 맛 진짜 이상하네요.”
“치킨 먹아 가면서 마셔.”
나는 민희에게 술에 관련한 간단한 팁이나 주도 같은 걸 조금 알려줬다.
“이래서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 한다고 했구나. 언니, 고마워요.”
“뭘. 미성년에게 술 먹이는 나쁜 어른이지 뭐. 근데 나도 너 나이 때 처음 술 먹었어.”
“어른들은 이 맛없는 걸 왜 마셔요?”
“그럼 넌 이 맛없는 걸 왜 먹으려고 했어?”
“취해보고 싶어서요. 뭔가 그런 기분이라.”
“어른들도 똑 같아. 취하고 싶은 기분에 마시다가 이런 이상한 맛에 익숙해지고 나중에 정들고, 근데 넌 왜 취하고 싶어졌어?
“엄마가… 제가 성적 떨어졌다고 불같이 화내고는 오빠 관련돼서 제가 모은 굿즈를 다 버렸어요. 제 방 멋대로 뒤지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정말 힘들게 구한 한정판 굿즈까지 어떻게 찾아내선 다 찢고 부숴 갖고 버렸데요. 분리수거하는 곳에 가 보니까 이미 가져가고 없더라고요.”
민희는 그게 정말로 억울했는지, 조금 울먹거렸다.
“사춘기 딸애의 방을 수시로 뒤지시다니 너무하셨네. 울 엄마는 내방 안 건드리셨는데.”
“저 너무 속상해서 펑펑 울었어요.”
“나올 때 엄마한테 행선지는 말씀 드렸어?”
“엄만 제가 독서실 간 줄 아실 거예요. 처음 나올 땐 독서실로 갈 생각이었거든요. 그러다 욱 해서… 12시까지 들어가기만 하면 아마 저 일부러 찾진 않으실 거예요.”
“술은 이제 그만 마실 거야?”
 “아뇨, 오늘은 한 번 취해 보고 싶어요.”
민희는 그 이상하다는 액체를 벌컥벌컥 다 비웠다. 나는 민희와 내가 민희네 어머니에게 걸려서둘 다 나란히 손바닥 스매싱을 등짝에 얻어맞는 상상을 했다. 민희는 울분에 찬 채로 내가 말아 준 소맥을 단숨에 비웠다.
“천천히 마셔. 주량 모를 때 한꺼번에 마시면 부대껴서 다 토하고 되게 힘들어.”
“아 목 아파.”
민희는 그새 술맛에 익숙해졌는지 능숙하게 맥주 캔을 따 마셨다.
“아줌마 서비스 더 안 넣어 주네.”
“여기가 서비스가 짜서 손님이 없나 봐요.”
“어쩔까, 시간 더 연장할까?”
“아뇨, 이번엔 게임센터 가요.”
“그럴까?”
“저 예전부터 좀비 나오는 건 슈팅 게임 해 보고 싶었어요.”
“바이오해저드?”
“와, 언니 잘 아네요.”
“전 남친 따라서 곧잘 했거든. 남친이 게임 마니아였어. 아케이드에 콘솔에, 온라인에, 모바일에, 개 덕에 아주 안 해 본 게 없어.”
“남친 생각날 텐데 가지 말까요?”
“아니, 안 좋게 헤어진 거 아니라니까. 가서 회심의 철권 실력을 보여주지.”
“우왕, 언니 기대 기대!”
우리는 취기가 가시지 않은 채로지도 어플을 켜서 근처의 게임센터를 찾아냈고 꽤 헤맨 끝에 도착했다.
“태고의 달인이다!”
“이게 뭐예요?”
“그냥 박자 맞춰서 막 두드리는 거야. 스트레스 옴팡 풀려. 하자, 하자!”
우리는 동전을 잔뜩 바꿔 와서 컨트롤러로 달린 북이 찢어져라 게임을 플레이 했다. 어쩌다 가열차게 두드려 댔는지 끝나자 땀이 솟았다.
“저 실은 중딩 이후로 게임센터 첨 와 봐요.”
“너 진짜 범생이었구나.”
우리는 동전을 마구 탕진해 가며 이 게임기와 저 게임기를 오갔다. 평소 같으면 하지 않았을 짓이었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객기가 하늘을 찔렀다. 민희가 하고 싶어 하던 바이오해저드 기기 앞에서 오천 원 남짓 날리고 취해서였는지 헛손질 때문에 콤보가 계속 끊겨서 철권 열 판까지 내리 진 후 나는 발끈해서 게임기를 내려쳤다.
“헤이하치 얍삽해!”
“그래도 언니 무지 잘했어요. 멋있었어요!”
맞은편에서 헤이하치로 대전을 벝던 사람이 그 소리를 들었는지 cpu전의 플레이를 멈췄다. 순간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
헤이하치는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내 바로 옆에 서 있었다. 나는 어벙벙하게 헤이하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외로 광장히 앳돼 보이는 얼굴을 한 헤이하치는 민희를 보더니 멈칫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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