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작전명 “동백꽃”(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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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작전명 “동백꽃”(5)

서상조<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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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조<시인·소설가>

 

<지난호에 이어>

 

인맥을 과시하듯 오히려 표정이 당당해 보이는 유 목사는 “제가 친분이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그냥 일기를 적듯이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선임자는 서류를 찬찬히 넘겨보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일련번호에 따라 내용이 아주 꼼꼼하게 적혀 있군. 골프채는 아예 별도로 정리가 되어 있구먼. 이 내용이 진실이라면 나라가 완전히 뒤집어지겠어. 이건 보험을 든 게 아니라 독약을 준비한 것과 같은 상황이군.”
“자, 목사님을 안전하게 모시도록 해. 나는 좀 더 둘러보고 나갈게.”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두 사람은 유목사의 양 팔을 낀 채 1층을 지나 그들이 타고 온 검은 승합차로 향했다. 남아있던 선임자는 가방에서 일부 골라낸 서류와 함께, 신 선생이 먹을거리를 담아왔던 천으로 된 가방에 스쿠알렌만 담아서 1층으로 내려왔다.
“당신은 여기 집사로 계시나 봅니다.”
“아, 예 저는 여기 청소나 하고 정원에 나무나 가꾸는 일꾼이죠.”
양 기사는 상대가 자신과 유 목사의 관계를 별 의미 없이 생각한다싶어 얼른 빠져나갈 궁리의 대답을 했다. 그들은 유 목사의 신병을 확보한 것으로 한껏 고무되어 있기에 양 기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우리는 검찰일 수도 있고, 경찰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조폭일 수도 있는데, 지금은 유 목사를 보호하는 사람들이오. 차후에 세상을 향해서 입을 열 기회가 있다면 딱 한마디만 하시오. 유 목사가 모르는 사람과 나갔다고 말이오. 이 시간 이후로 우리는 당신을 24시간 관찰할 거요. 그것이 10년일 수도 있고, 30년일 수도 있소,”
선임자는 거실을 나가다가 멈칫하더니 벽에 걸어 둔 유 목사의 지팡이를 챙겨 나갔다. 유 목사가 올라 탄 차량은 창을 향해 앉도록 개조가 되어 있었고, 처음 보는 여러 장비가 설치되어 있었다. 천천히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유목사는 체포된 느낌에 휩싸이면서 옛 중정부장을 지냈던 김형욱 사건이 뇌리를 스쳐갔다.
 
“당신은 현수막에 이름을 올린 그 분이 그렇게 만만합디까? 그것도 모자라 ‘우리가 남이가’까지 이름 뒤에 적어 놓았으니 텔레비전 생중계 가운데 전국적인 망신을 어쩔 겁니까? 무슨 엄청난 커넥션이 있는 듯이 광고를 해 놨으니, 지금 어른께서는 화를 삭이고 있는 중이오.”
“그건 나로서도 서운함이 없는 것은 아니지요. 내가 배를 불법 개조한 죄를 받는 것은 맞지만 세월호의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습니까? 구조과정의 과오가 심각하게 큰데…….”
유 목사의 말에 선임자는 그런 논리 따위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젊은 사내에게 고개를 돌려 다그치듯 물었다.
“아직 연락이 없는 거야?”
“아, 예 지금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설치된 장비에서 아주 작은 빨간불이 깜박이고 있었다. 선임자는 놓여있는 헤드폰을 아주 능숙하게 머리에 걸쳤다.
“예. 동백꽃입니까? 알았습니다.”
헤드폰을 내려놓은 선임자는 덤덤한 표정으로 유 목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젊은 사내를 향해 고개를 가볍게 젖히며 차 밖으로 나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두 사내는 유 목사 곁을 바짝 붙어 지키고 한 명이 선임자를 따라 차량 밖으로 나갔다.
“꽃의 잎을 하나씩 떨어뜨리는 장미꽃이 아니라 모가지 채로 떨어지는 동백꽃이란다. 나는 험한 꼴 보는 것도 질렸으니 자네들이 처리해. 헤매다가 저혈당으로 사망한 게 되어야 되니까 상처내지 말고 VX를 사용하도록 해. 유기 장소는 별장에서 적당히 먼 곳으로 하고, 내가 챙겨온 천 가방에 스쿠알렌 넣고 지팡이까지 곁에 두도록 해. 너무 일찍 발견되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영영 발견이 안 되어도 골치 아파.”
자연스레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엄중한 지시사항이었다.
"그런데 VX는 신체 내에 잔흔이 남지 않겠습니까? 일반 저독성농약도 20일은 지나야 되는데 파라티온의 수십 배 독성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완력으로 하겠다는 거야? 저 영감이 나이에 비해서 기력이 얼마나 센데. 지금 상황은 꺼진 불도 다시보자는 자세로 임해야 돼 알겠나?”
젊은 사내는 대답을 대신하듯 결의에 찬 표정으로 차에 올랐다. 분위기에서 살기를 느낀 유 목사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피력해서 위기를 모면해 보고자 마음먹었다.
“이것 보시오. 내가 이런 가혹한 대우를 받을 사람은 아니라오. 내 출판기념회에는 전직 대통령과 서울시장도 참석했어요. 내가 잘못을 했다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으면 될 것이 아니겠소? 그리고 내가 도피생활을 한 것은 검찰에게도 책임이 있단 말이오. 오대양 사건 때에 간단한 진술서만 한 장 받으면 된다고 검찰이 나를 불러놓고서는  4년이나 감방에 가두어 놓지 않았겠소?”
“전직 대통령이나 서울시장은 투표용지 숫자 보고 다니는 사람들인데, 당신네 신도들 머리 숫자 보고 갔겠지. 어디 당신이 대단해서 갔겠소?”
젊은 사내는 핀잔처럼 말을 던지고는 다시 자리를 고쳐 앉으며 정색을 하고 말을 계속 이어갔다.
“당신은 스스로 운명을 불행하게 만들어 버렸어. 불법개조도 할 수 있고 사고도 날 수는 있는 일이야. 그런데 사자의 코털은 왜 잡아 당겨 가지고 우리까지 고생을 시키냐고 이 양반아. 그 현수막만 안 걸었어도 당신은 감방생활 몇 년 편하게 하다가 예전처럼 인간과 신의 중간쯤에서 폼 나게 살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야.”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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