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ive it like you stole it, 훔친 것처럼 달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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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ve it like you stole it, 훔친 것처럼 달려!(2)

정아경 홈페이지용.jpg

정아경(수필가)

 

 

<지난호에 이어>
“엄마도 이제 샤넬 하나 가져도 되지 않나?”
딸의 말이 시작이었다. 딸의 그 말은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수 십 년 단 하루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일하고 자식 키운 나에게 그 정도의 보상은 충분하다는 당의를 부여했다. 당의성이 생기니 욕구가 일었다. 갖고 싶다. 갖고 싶다! 조금씩 종잣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여행모임에서 모인 돈의 일부를 현금으로 돌려주며 플렉스하자며 명분을 보태었다. 예상가격의 반이 모아지고, 나머지는 가족의 찬조와 카드 할부로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 점심 즈음 백화점에 갔다. 그동안 스쳐지나만 갔던 매장이었다. 구매를 하겠다는데 대기번호를 받으라고 했다. 89팀의 대기가 있었다. 다른 쇼핑도 하고 점심도 먹고 백화점 내부에 있는 카페에 가서 카페라떼도 한 잔했다. 아주 여유롭고 느리게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4시간의시간이 지나자 입장이 가능하다는 문자가 떴다. 친절한 매니저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검색해 두었던 가방을 주문했다. 없단다. 몇 개의 디자인을 보여주며 그 제품을 구매하겠다고 했다. 그 물건도 없단다. 아예, 재고 자체가 없다는 매니저의 다정한 목소리는 참으로 비정했다. 그날 이후 나는 몇 번 더 달려갔다. 오픈 시간에 맞춰서 갔더니 이미 늦었다. 후기를 찾아보니 오픈 몇 시간 전에 가서 줄을 서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백화점은 자본의 벽돌로 지어져 자본의 휘장을 감고 자본의 밑창에 수도 없이 밟히는 곳. 길고 높은 백화점 문을 열고 들어서면 딴 세상이 펼쳐진다. 은은한 향수는 후각을 마비시키고 조명을 받은 화장품과 보석들은 시각을 혼미하게 한다. 그 백화점 1층에 입점한 명품매장은 욕망의 정점을 자극한다. 명품매장 중 샤넬의 아우라는 빠지지 않는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소비욕구가 명품매장으로 대체 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지만 막상 와 보면 상상을 초월한다. 샤넬 매장은 들어가는 것 자체가 치열한 경쟁이었다.
“부티크 입장이 가능합니다.”
메시지를 받자 심장이 콩닥거렸다. 우아하게 들어가고 싶었지만 나의 차림은 그렇지 못했다. 다른 층을 배회하다가 샤넬 매장으로 향하는 나의 종종걸음마저도 우아와는 거리가 멀었다. 매니저의 안내로 매장을 둘러보았다. 먼저 온 팀은 이미 결제를 하는 중이었다. 상품이 몇 개 있었다. 저 좁은 출입문을 들어오는 것까지가 망설임의 연속이지, 막상 들어가고 나면 명쾌함 밖에 없다. 이 방 안에 있는 모두가 그렇다. 사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이미 오래전에, 오픈런을 시도하기 훨씬 이전에 해결된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명쾌하게 구매를 결정했다.
포장을 정성껏 해주는 매니저에게 가방은 그냥 들고 가겠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후기를 찾아 봤을 땐 다들 라텍스 장갑을 끼고 생명체를 대하듯 포장을 한 꺼풀씩 벗기며 언박싱 영상들을 찍던데, 나야 어디 자랑할 곳도 없으니 나의 이 순간, 이 감정이 더 중요했다. 오래도록 돌려보게 될 장면 하나를 위해 나는 과감하게 포장에서 가방을 꺼내 들었다.
어깨에 묵직함이 느껴진다. 내 긍지의 무게. 당분간 나를 또 숨이 찰 정도로 뛰게 만들 나의 긍지, 나의 우울함, 나의 샤넬. 온갖 향기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백화점 1층을 지나친다. 같은 차림인데 들어갈 때와는 태도가 다르다. 당연하다. 나는 지금 우울한 긍지를 어깨에 메고 있다.
원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가졌을 때 느끼는 감정은 뭘까. 환희! 환희는 욕망의 성취일까. 욕망의 다른 이름일까. 인간의 모든 감정에 숨겨져 있는 동반자적 감정을 욕망이라고 한다면 오픈 런을 대기하는 나의 행위는 욕망이 맞다. 왜곡된 나의 가치, 낡아가는 나에 대한 가치를 샤넬로 세우려는 최후의 발악. 아직 세상에서 밀려나지 않았다는 증명처럼 현재를 지탱하는 자존! 밀란 쿤데라의 『느림』을 들고 샤넬을 사들고 나오는 나는 결국엔 속세의 가치에 동참하고 마는, 오십대 중반의 속물.  소유 중에서도 소유의 상징을 모시고 차에 도착한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쉰다. 뭐 어때. 나를 아는 그 누가 나를 흉 볼 수 있으랴.
차 시동을 켜니 휴대폰 블루투스가 자동으로 연동된다. 습관처럼 휴대폰 음악 어플을 훑고 플레이리스트 가장 위에 놓인 노래를 재생한다. 어느 영화에서 나온 노래인데, 제목이 멋져서 종종 듣던 밴드 노래였다.
This is your life, you can go anywhere 이것은 어디든 갈 수 있는 너의 인생, You gotta grab the wheel and own it And drive it like you stole it. 운전대를 잡고 마음대로 해봐. 훔친 것처럼 달려. 
드럼과 일렉기타가 마구 주고받는 노래를 따라 내 마음도 벅적해진다. 후련하지만은 않은 이 감정.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저 빛나는 가방. 훔쳐온 것처럼 낯설다. 다음 스케줄에 쫓겨 속도를 내는 것이지만, 마치 질주는 나의 본능이라는 듯이 달려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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