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충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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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충전하다

정아경(수필가)

정아경 홈페이지용.jpg

정아경(수필가)

 

숙명! 살면서 숙명이라는 단어를 곱씹어 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운명은 자주 애용하는 단어이다. 운명이라는 단어는 복잡한 매듭을 한꺼번에 자르듯 해결의 실마리가 되곤 했다. 잘못된 선택이지만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운명은 합리의 정당성을 부여했다. 철석같이 믿고 싶은 인연 앞에도 운명은 관계의 정당성을 부여했다. 운명이라는 단어를 뒷담화의 은유처럼 쉽게 쏟아내고, 가볍게 소비하며 살았다. 가끔 힘겹고, 가끔 절망적이지만 운명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서 그럭저럭 여기까지 살았다. 하지만, 숙명은 낯설기만 하다. 낯선 단어 앞에서 벅찬 감정을 느껴보는 경험 또한 나쁘지는 않은 밤을 보내고 운명과 숙명, 숙명과 운명을 생각한다.
바깥 기온이 영하 10도를 찍은 성탄절 밤에 빅토르 위고 원작의  『노트르담의 파리』 를 봤다. 운명 같은 인연과 함께…. 프랑스까지 갈 수는 없지만 프랑스에서 온 배우들을 보려는 발걸음이 계명아트 센터를 가득 채웠다. 금발에 늘씬한 백인, 불어는 언제나 낭만적이다. 흑발에 짜리몽땅하고, 강한 억양의 경상도 사투리로 살아온 나는 얼음 위에 구슬같이 도르르 구르는 둣한 그들의 발음이 퍽 이지적이고 몽환적이다. 성탄절 • 운명 • 불어 • 뮤지컬…, 이질적 단어는 일상을 환상의 공간으로 이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다시 집합금지와 영업시간 축소로 4인 이상의 모임은 신년회로 연기되고, 밤 9시가 되기도 전에 가게들은 불을 껐다. 불빛이 꺼진 도시의 밤은 더 빨라지고 더 길어졌다. 우리들의 마음 공터는 더 길고 더 깊은 바람이 불었다. 외롭다고 하지 않았지만 외로웠고, 지쳤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다들 지쳐있었다. 성탄절을 축하하는 단체 톡방에도 열기가 시들하다. 이모티콘의 발랄함도 식상하다. 힘들다고 넋두리하는 친구의 한숨소리를 마주앉아 듣고 싶다. 한숨에도 온기가 있기에 그 온기를 공감하며 살고 싶다.
과잉된 열정으로 피로했던 지난 삶과는 달리 열정의 불씨가 필요한 나날들이다. 문자로 오고가는 안부가 해를 거듭하고 또 해를 거듭하고 있다. 왁자한 큰 행사는 열심히 살아온 누군가의 성과를 축하하는 자리였고, 그런 자리는 성장의 다짐을 주기도 했다. 4명의 은밀하고 깊은 만남의 강요는 광장을 그리워하고, 단체를 그리워하게 한다. 소진된 열정을 충전할 곳을 찾던 와중에 뮤지컬 공연은 몇 배의 기다림이었다.
15세기 • 프랑스 • 대성당 • 주교 • 근위대장 • 곱추 • 집시여인 에스메랄다… … 조명과 배우들의 옷차림은 현실을 잊게 해주었다. 욕망에 이끌려 신념을 저버린 주교, 욕망에 이끌려 언약을 배반한 근위대장, 누추한 외모지만 아름다움에 매료된 곱추~ 그들은 각 자의 사랑을 노래하고, 각 자의 숙명을 노래했다. 그들과 한 공간에 있는 그 자체로 이 순간이 숙명처럼 느껴졌다. 숙명이라는 단어가 치명적으로 매력적인 단어로 다가왔다. 숙명이라는 단어 조각을 어떤 지점에 맞출까 궁리하는 나의 허세가 가소롭지만 그런 나조차 너그럽게 봐주기로 한다. 왜냐하면 오늘 밤은 성탄절이고, 나는 글쟁이니까….
뮤지컬은 내내 사랑 • 사랑 • 사랑타령이었다. 철학자 강신주는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러니까 평소의 소신이나 가치관, 심지어 종교마저 기꺼이 내던져 버리는 것을 사랑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인류가 기록이라는 것을 하게 되면서부터 ‘사랑’이라는 주제를 제외하면 남아있을 고전이 있을까? 사랑은 호모 사피엔스의 숙명인가보다.
사랑이 삭제된 삶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무엇이 삶을 의미 있게 할까. 하루살이 같은 삶을 견디기 위해 문자에 의미를 새겨 영원을 기약하는 것이 글쓰기라고 동료 작가는 말했다. 영원히 존재하고 싶은 열망보다 시대를 넘고, 공간을 초월해도 변치 않은 고민, 한결 같은 대답은 사랑이다. 종교적 신념으로 견뎌낼 것 같았던 주교의 평생 신념이 눈앞에 서 있는 아름다운 집시 여인을 욕망하며 무너진다. 본능적 욕망 앞에 무너지는 그의 노래는 공감 이상의 감동이었다. 욕망을 회피하지 않고 절절히 노래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개개인의 욕망조차 용납하게 했다. 찬바람이 불던 마음이 훈훈하게 데워지는 중이다.
그들의 욕망을 들으며, 욕망에 동동거리는 옹졸한 나를 위로 받는다. 극이 결말로 향하고, 공연장의 열기도 뜨거워진다. 관객의 마음 열기가 공간의 온도를 높이니 겉옷을 벗는 이가 늘어난다. 앞자리에 앉은 커플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서로 머리를 기대고 무대에 집중하는 저들은 어떤 위로를 받고 있을까? 사랑에 목숨 걸고, 명예도 망각하는 중세시대 그들의 절망과 사랑을 들으며 방전되었던 마음에 파란불이 한 칸씩 올라갔다. 충전되는 중이다.
시들했던 일상이 서서히 차오른다. 느슨해졌던 관계들이 다시 단단해졌다. 곁에 있는 이의 손을 꼭 잡아본다. 놓고 싶지 않은 손, 오래 잡고 싶은 손이다. 참 소중해서 숙명을 붙여본다. 어떤 부연 설명도 없는 ‘숙명’이라는 단어로 시대의 걸작을 남긴 빅토르 위고는 아닐지라도 찰나 같은 삶에 숙명 같은 절절한 사연 하나는 간직하고 싶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음파는 바닥을 타고 내 심장을 두드린다. 열연하는 배우들의 노래 소리는 공연장을 가득 메우고 관객의 가슴마다 사랑의 샘물을 수혈해 주었다. 배우들의 커튼콜을 들으며 충전은 완료되었다. 인생 뭐 있냐! 이보다 더 행복한 연말은 없다. 카르페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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