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 토끼의 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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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 토끼의 뿔(6)

서 상 조(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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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상 조(시인·소설가)

 

“넌, 아니! 희다방은 이제 영원히 끝이야. 그리고 너도 철창에 집어넣기 전에 사라져라. 야! 비서실장 이 새끼야, 군수실이 소나 개나 막 집어넣는 곳이야? 여기 미친년 이거 끌어내 임마.”
“아뇨, 제 발로 나갈께요. 그리고 군수님, 협상은 결렬된 것으로 하고 철창도 지금 바로 제 발로 갑니다.”
영문도 모르고 쩔쩔매는 비서실장과, 무슨 일을 저지를 것만 같은 정혜의 태도에 분노와 걱정이 얽힌 군수의 표정을 두고 정혜는 유유히 밖으로 나왔다.
 경찰서는 군청과 담하나 사이였다.
정혜는 정문의 의경에게 안내를 받고는 곧 바로 수사과 조사계를 찾아갔다.
 경찰관 맞은편 의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 책상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조사계는 경찰관이 먼저 사건을 처리하면서 필요한 피의자와 참고인을 호출하여 부르는 것인데, 웬 젊은 여인이 느닷없이 마주앉아 버리자 경찰관은 의아해 했다.
“무슨 일이시죠?”
“예, 제가 범법행위를 해서요. 자술서를 쓰기위해 왔습니다. 먼저 구술로 내용을 말씀드릴게요. 여기 지역의 군수님을 비롯한 유지 분들이 불러서 티켓을 나갔거든요. 단순한 티켓이 아니고, 그 중 한 사람과는 아침까지 있었습니다. 종이하고 볼펜 좀 주시죠.”
정혜의 말에 조사 계장을 비롯한 사무실 안의 모든 사람이 약속이나 한 듯이 정혜 쪽으로 시선이 모였다. 마치 오목렌즈로 빛을 한데로 끌어 모으는 것 같았다. 맞은 편 경찰관은 좀 놀라는 듯하면서도, 스스로 찾아와서 자술서를 쓰겠다고 하니까 쓸 테면 쓰라는 식으로 종이와 볼펜을 건네주었다.
정혜는 이틀 전의 일과 어제 일에 이어 오늘 아침의 보복성 영업정지에 이르기까지 모두 적어 내려갔다. 그 사이에 조사계장이 뒤에서 내용을 얼핏 보는가 싶더니, 문밖으로 슬며시 나갔다.
정혜는 물장사에서 놀은 지는 1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지만, 배운 게 있었다. 그것은 ‘사즉생’이었다. 모두가 잘난 척하고 거짓투성이 뿐인 추한 영역일수록 죽기로 달려들어야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방으로 돌아온 정혜는 걱정스러움으로 인해 화까지 덮여져버린 주인 언니에게 절대로 피해를 끼치지 않겠노라고, 어떤 경우도 보상을 하겠노라고 이야기하고는 방으로 들어와 더럽고 추잡한 눈빛들이 꽂혀있는 짙은 화장을 지우기 시작했다. 방에서 듣는 주인 언니의 전화 목소리는 정혜에게 모든 것을 짐작케 해 주었다.
처음에는 주인언니의 주눅 들었던 목소리가 시간이 갈수록 차츰 생기를 찾더니 나중에 해가 지고 나서는 자신감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저들이 협박에서 회유로 작전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경찰서에서는 이 문제를 틀림없이 서장에게 긴급 보고했을 것이다. 그다음엔 군수와 친분이 있는 서장이 정혜 사건을 법대로 처리했을 때, 이 결과가 차기 재선을 노리는 군수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소상히 설명했을 것이다.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게 아니라 온 몸에 불을 뒤집어쓰게 생겼으니 군수와 자술서의 명단에 나와 있는 지역의 유지들은 자기네들끼리 긴급회의를 소집했을 것이 뻔한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방에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서 금융기관의 지부장이 찾아왔다.
어쨌거나 타협하고픈 내심이 얼굴에 쓰여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른 사람은 답답할 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최악의 상황이 됐을 경우에 군수와 의장은 지역민들에게 어떤 변수를 써서라도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수단들이 있다.
그리고 지역 신문사 사주는 몸에 개똥을 발라 다녀도 뭐랄 사람이 없다. 국회의원 연락 소장은 국회의원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너무나 많이 알고 있기에 이까짓 일로 답답할 게 없는 것이다.
결국 금융기관지부장은 징계를 받아 좌천이 될 수도 있으니, 제일 답답한 입장일 게 뻔하다. 제일 주범이 연락소장이라고 해서 그 쪽으로 책임을 몰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군청의 막대한 일 년치 예산을 유치하기 위한 영업적 차원이라고 변명을 해도 징계의 시늉은 있어야 할 것이니 가장 큰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방에서 나온 정혜에게 지부장은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
“참으로 유감이지만 이미 집행한 벌금과 영업정지는 부하직원들에게 상관으로서 지시한 일이라 자존심상 철회가 불가능하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오백만원을 줄 테니 민양 위로금 오십만 원하고 나머지는 벌금하고 희다방 사장님의 손해부분을 메꾼다고 생각해 주세요.”
그나마 지부장은 제일 인간미가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정혜는 이미 빼든 칼이라 끝까지 갈 참이었다. 칼자루를 쥐었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느끼면서 아주 단단히 혼을 내 주고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돈은 필요 없습니다. 같이 손잡고 다정히 똥물로 들어가는 겁니다. 지부장님! 전부 스케일이 작아서 불가능하겠지만, 꼭 돈으로 해결을 원하시면 오천으로 하죠. 내일 오전 10시까지! 안녕히 가세요.”
단호하게 말을 던진 정혜는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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