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조(시인·소설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내게 더 이상 슬픔이 아니다슬픔도 주어진 분량이 있어사막의 물처럼 고갈 되었고시간은 무심의 눈빛처럼 싸늘하여네가 떠났어도 꽃들은 피었다 지고별들은 하늘에 오르는데 그러나 슬픔이 말라붙은 자리에도또다시 그 씨앗은 이끼처럼 질겨문득, 어느 여름날폭풍우처럼 일어나마음을 휘몰아치지만이 땅에는 떠나는 것이 너무도 많아예사로이 여겨야 될 것일 뿐 나는 오늘도 두 번 다시만나지 못할 것들을 스치면서너무 그리워하거나 슬퍼 말기로아프게 진화하고 있다.
착하게 살자며 여기까지 왔습니다.뜻있게 살자며 여기까지 왔습니다.잘살아보자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험한 고갯길, 가시밭길넘어지며 일어서며여기까지 왔습니다. 갈 길 멀어바라보니 저녁놀 탑니다.
미숭산 노을은서쪽으로 가는 그리움이다 쪽배 띄우며 노래하는 이승의외로운 풀벌레 날갯짓이다 미숭산 붉은 하늘은 별까지 걸어가는 적막이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추억을 데리고 걷는 허공이다 붉은 구름에 쌓인 어두운 산 그림자갈 길 바쁜 기러기 떼 하늘길이다
짚고 다니던 지팡이가성가셨나 보다 꽃피는 봄 날 어머닌지팡이를 팽개치고훨 훨하늘로 날아갔다 송홧가루 날리는 오월드릴 수 없는 카네이션 구름꽃 한 다발당신에게 드립니다
진금숙(스토리텔링 동화연구가) 비 내리는 여름날낡은 보도블럭에큰 트럭들이 힘주어 지나간다보도블럭 모서리들이 조금씩 부서지더니그 틈 사이로 비가 스며들면서작은 웅덩이들이 태어났다 제각기 웅덩이들은 꿈꾸듯 말을 한다“이렇게 살다 보면 나도 연못이될 수 있을까?”“가을비라도 늦게까지 내려서 물이마르지 않는다면 몰라”“난 내 물을 동동 구르며 한 번만추워보고 싶어”“난 첫 눈을 보며 하얏게 얼어보고 싶어” 이들의 기적은우리들의 일상
독도 물길 이 백리 파도를 타고가면 동해의 가장자리 동도 서도, 섬 가족 옹기종기 살아가는 세상 심해에 뿌리박고 돌 기둥 세워 올려 우레 같은 파도에도 우레 같은 천둥에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내다운 섬 조상들이 지어주신 대한봉 우산봉 탕건봉 삼봉을 지붕삼고 촛대바위 촛불 켜고 삼형제 동굴바위 형제우애 두터운 정 가슴에 새긴 한국 령 한국인이 새겼나니 변방에서 부르노라 독도의 노래 변방에서 지키노라 대해에서 싸우노라. * 독도의 날을 기해 부부동반 독도 나들이...
이병연(고령문협 오픈스터디 회원) 내캉 놀러가자 “아이고 와 이리 덥노”밖에 나가려는데 하늘을 보니햇볕이 잔뜩 화가 나 있다뜨거운 해가 너무 무서워산 너머 어딘가 숨어 있는하얀 친구를 불러본다“뭉개야너 그 친구들 다 데불고 온나내 니캉 가머쪼매 덜 뜨거벌 거 같데이어떻노니 그래 해 줄 기제뭉개야”
진금선(동시인/스토리텔링/동화연구가) 뱅글뱅글 돌아가는 훌라후프 속에살랑살랑 엄마의 엉덩이“빠져라 빠져라 살 빠져라”엄마의 주문은 늘어가지만빙글빙글 춤만 추는 미운 동그라미 통나무 허리에 굴리는 아빠의 훌라후프 윙윙윙윙 돌아가네프로펠러보다 더 빠르게“돌아라 돌아라 계속 돌아라”아빠의 주문도 늘어가지만자꾸만 내려가는 미운 동그라미 동글동글 돌아가는 미운 동그라미아빠는 하하하하암마는 호호호호나는 헤헤헤헤입 모양도 동그랗게 만들어 놓았네
유윤희(시인) 결혼하면서 당신의 삶은 사라지고나를 낳으시고는 영혼마저 없어.이제 내 머리에 듬성듬성 흰서리 내리고목에 저승꽃이 늘어진 지금에서야광대한 우주 그 보다도 더 넉넉한당신의 사랑을 엿보고는이 아들 어머니에게는 사랑했다는 말 차마 할 수 없어라. 커다란 거울 아래긴 것, 동그란 것, 파랗고 빨간넘어지고 서 있고 이리저리조그만 용기들- 아내만의 소유물평생 봐도 제대로 정리된 적 없다.때로는 삭풍 사납게 몰아쳐고운 두 뺨에 눈물이 흐를 때도이제 그대 머리에도 흰 안개 서려도그칠 줄 모르는 당신의 님 향한 굳은 ...
시인 설화영 빗방울 방울방울꽃잎 사이로삼동을 이겨내고 봉오리 맺은 그 자리에눈부신 축복의 보석을매달아 준다꽃향기 흘려강물로 흐르고나는,꽃이 머금은 영롱한 옥수하도 예뻐눈에 넣고가슴에 담아싱싱한 꽃잎 입맞춤고목이 웃는다.
우종율(시인·수필가) 두리번거린다. 여기서 나를 가둘 자 누구인가.자동판매기 내용물은 같지만 밖엔 내가 없다.외국인 하나가 새벽 담배 먹고 있다.지난밤 못 채운 알코올 농도를 채우려는지맥주 캔을 따려 두리번거린다.둘러보니 나도 그들 눈 속에 든 어눌한 표정의외국인, 칭얼대던 지난밤의 거리를 되짚어본다.낯선 이들과 나눈 회전 초밥, 순서 되어 돌아나오는 접시만 선택했다. 그러다 들켜버린독백, 이젠 모두가 익숙하다. 여자 하나 바삐 푸른 신호등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어디로 가는 걸까. 뒤따라가려면 이미 늦은 깜빡거림,누가...
강기철 아버지 흰 소 같은 아버지옹이 박힌 뼈를 뽑아3남매 먹이시고거죽만 남아 시가 되셨는데 아버지 하고 불렀더니큰 산이 대답하고깊은 강이 대답하고높은 하늘이 내려온다네. 어머니 시를 짓는 것보다숭고한 것이시처럼 사는 것이라고老詩人은 노래하신다. 등굽은 다랑논에백발의 老母시처럼 살지 못해시가 되어 사신다. 작가 프로필 72년생덕곡면 거주고령문인협회 회원고무신STUDY 글방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