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희시인 하루를 마무리하는 어둠이내리면 가로등 불빛은 외로운 곳을 밝힌다 오늘은 오늘의 꿈이 있고내일은 내일의 꿈이 있고 밤하늘 별이 되고 싶은 나는기도의 시간이 된다 밤마다 건너는희망의 돛 올리고 이룰 수 없는 고요함을 밀며끝나는 날까지 노를 저으리라 산다는 것은무작정 어둠을 밀고 간다는 것뜨거운 내일에 부딪쳐 살아간다는 것
윤 영수필가 점심을 먹고 마로니에 가로수 길을 걸으며 B가 말했다.“그대는 연구 대상이야.”라며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가로수길 너머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는 이야기에 열변을 토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부동산 따위에 관심 없다며 말끝을 흐리곤 애써 나무의 표피를 어루만졌다.그는 여전히 미련인지 애착인지 몇 마디를 잇는다. “지금이 80~90년대 판자촌에 틀어 앉아 재개발을 바라볼 것도 아닌데 그 강 건너 시골 아파트에 30년이나 뼈를 묻고 사냐. 새집을 분양받아 프리미엄 받아넘기고 해야 돈을 벌지....
우상혁시인 어느 유명한 철학과 교수가제자들과 산행 중 화두를 던졌다 심조불산하니 호보연자라제자들은 머리를 싸매며스승의 여덟 글자에무슨 심오한 뜻이 있는가 하여하산 때까지 저마다 깊은 생각에 빠져그날 산행은 원치 않은 팔자 해석 산행이 되고 말았다 下山酒 자리서제자들이 팔자 해석을 요청하니교수 曰너희들은 앞만 보고 길만 찾으며정답만 푸는 삶을 살지 말고때론 거꾸로도 걷고 뒤도 자주 돌아보며오답도 정답 이상의 명답이 될 수 있으니그런 관점서 답을 찾아보게나 하니그제야 학생들이 무슨 뜻인 줄 알고한바탕 웃음으로 화답했...
여 명시인 지나고 보니, 은퇴를 한 지도 여러 해가 흘렀음을 퍼뜩 깨닫는다. 아점을 먹고 나서, 설거지를 한다. 이어 청소를 한다.분리수거 쓰레기통에, 일반 쓰레기봉투를 얼마나 양이 찼는지 체크한다. 집을 나서기 전에, 버릴 것들은 다 챙겨 나간다.아파트에는 분리수거 함들이 따로 따로 잘 정비되어 있다. 종량제 봉투 쓰레기들을 모으는 큰 플라스틱 통이 있고, 박스를 모으는 원형 포대, 투명 페트병, 일반 플라스틱류, 비닐류, 철제류, 병류 넣는 곳, 스티로폼 박스 모으는 곳, 또 가정에서 쓴 폐기름을 담는 드럼통과 음식 쓰...
유윤희시인 우아한 자태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기품배울 것은 처음부터 없었다.아침에 이슬을 먹고푸른 하늘 높이 올라 구름 속을 노닌다.해가 지면 물안개 아늑한 강가 소나무 위에서멋들어진 친구들과 천년을 살지.ㅇㅎㅎ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제왕그 누구도 감히 나를 이길 수 없다.옛날 사나운 해적선이 폭풍과 싸우다이제는 조용히 자고 있는 바닷속보석이 자갈처럼 널려 있는형형색색 산호숲에 머물다가야자수 섬 사이에서 산처럼 잠을 잔다. 지금까지누구도 완전하게 기록하지 못했다.나는 학고래다.
정효영시인 바다 한없이 넓은 세상 날마다 평온한 수평선의 행복 세상의 온갖 오염을 한없이 받아주는 바다 은빛 물결 꽃으로 피어나는 바다 큰 파도의 뚝심과 바다를 차고 오르는 배짱 바다의 사나이다
설화영시인 무상화 만개한 봄꽃에서 항상 하지 못한 무상을 보듯 몸과 마음의 이 느낌 저 생각 하나 변하지 않는 꽃자리 어디에도 없네 보고 듣고 말하는 몸짓들 하나조차 선악을 분별하는 구름 같은 모든 것이 아상(我相)에 얽매인 마음의 탓인 것을 봄꽃보다 앞서 피는 그 이름 무상화여 시간과 공간의 올실과 날줄처럼 인과 연이 생하고 맺는 것도 탐진치의 한 생각 생멸의 법칙이니 본성의 인과(因果)는 무상의 꽃이구나
박진경 일러스트, 웹툰 작가 그 사이에 여동생이 사고를 한 번 쳤다. 번 돈을 코인에다 거의 몽땅 꼬라박고는 탈탈 털려서 갈 곳도 없다며 내가 사는 집으로 왔다. 몇 년 간 번 돈을 다 잃어서 멘탈이 너덜너덜한 채 부모님에게 찾아갔다가 면박까지 들어버리면 감당이 안 될 것 같다며 내 이불에 눈물 콧물을 바르고 펑펑 울어대는 녀석에게 나는 차마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여동생의 산더미 같은 짐 덕분에 집이 숨 막이게 좁아져서, 결국 우리는 수도권의 가격은 같고 좀 더 넓은 집으로 옮겼고, 출퇴근 시간은 얼토당토않게 길어졌으며...
김성선시조시인 봄이다 진달래가 지천인데 뭐 하노화전이 묵고 싶다 하더니 안 오나열어둔 대문 꼭대기에 지는 해가 걸치었네 여름엔 수박 잘라 평상에 앉아봐라옥수수 한 자루씩 뜯으면 좋지 않나자식들 발자국소리 맨발로 맞으시네 입맛이 왜 이렇게 갈수록 없나 몰라혼자서 키운 자식 주마다 부르더니먹고픈 맛이 아니라 보고픈 맛이었네
박진경일러스트, 웹툰 작가 당장이라도 머리 위로 후두둑 쏟아져 내릴 것처럼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는 별들을 멍하니 쳐다보며, 나는 방금까지의 감상적인 기분을 어느 정도 갈무리했다. 사방이 먹먹할 정도로 조용해진 가운데, 형오가 말했다.“너랑은 묘하게 말이 잘 통하는 것 같아.”나는 피식 웃으며 그의 말에 대꾸했다. “그러게. 나이 들면서 바빠지고 친구들이랑은 점차 멀어져서 업무적인 거 외엔 말할 일이 많질 않았는데… 난 네가 이렇게 할 말을 많이 쌓아두고 살았는 줄 오늘 처음 알았다.”“나도… 전투기가 돼갖고 수다 떨 일...
진금숙동시인 꾸욱 눌러쓴 한마디에떨리는 이내 가슴 밤하늘 검은 머리땅 밑까지 내려올 때올려놓은 이 편지를 바람 위로 띄워볼까흰 눈으로 쌓여볼까 쌓이다 쌓이다창가로 무너져그리움으로 닿게 할까 * 작가 프로필스토리텔링 동화연구가대가야스토리텔링 예술연구회 기획이사숲향기아로마 교육이사레크레이션 강사
박진일러스트, 웹툰 작가 “수고했어. 고마워. 일단 시스템 체크를 위해 미션컴퓨터를 부팅해볼게.”형오의 말에 내심 안심하고 있자니, HUD 위에 낯선 로고가 뜨면서 계기판 전체에 불이 들어왔다. 무인기라 그런지 제어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보였지만 그래도 내 눈엔 꽤 복잡하게 느껴졌다. “전기 많이 먹을 거 같은데…….”기기가 물리적으로 움직이느라 나는 동작음을 들으며 걱정하자 형오가 말했다. “어차피 잠깐이야. 5초 내로 끝낼게.”그의 말대로 곧 시스템 전체의 전원이 내려갔다. “끝났어.”“그래. 이제부턴 그냥 노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