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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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면 장군 향사 봉행郡에서는 지난 20일 오전10시 도암서원에서 기관 단체장 및 유림 등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면 장군 향사를 봉행했다. 이번 도암서원 김면 장군 향사 봉행은 오원수(고령, 고창오씨)를 초헌관으로, 아헌관에 김태호(대구, 고령김씨), 종헌관에 김용인(서울, 고령김씨)이 각각 맡아 진행됐다. ‘송암 김면장군’은 고령 출신 유학자로 임진왜란이 발생되자 의병을 일으켜 무계, 개산포, 우척현, 지례, 사랑암, 성주성 등에서 치열한 항쟁을 벌였으며, 의병장과 경상 의병도대장으로 의병연합군을 결집해 10여 차례의 큰 전투와 30여회의 소규모 접전을 벌여서 왜군을 막아냈다. 이날 곽용환 군수는 향사전에 도암서원에 들러 향사 봉행을 준비한 유림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면서 “향사를 통해 송암 김면 장군의 충효 사상 및 호국사상을 계승하는데 노력해 주실 것”을 당부했다. 손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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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세상’ 대가야왕릉의 비밀군은 코로나19로 지친 군민들을 위해 지난 14일 오후 5시 문화누리관 우륵홀에서 창작뮤지컬 가얏고 대가야왕릉의 비밀 ‘숨겨진 세상’- 공연을 무료로 개최했다. 올해 9회째를 맞는 이번 공연은 전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창작극으로 고령의 대표적인 문화자산인 대가야고분군과 함께 보물 605호 양전리 바위그림을 담은 작품이다. 90분간 진행된 이번 공연은 제30회 자랑스런 군민상 시상식 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출입자 명부작성, 발열 및 의심증상 체크, 좌석 간 거리두기 등 방역 수칙을 철저히 준수하면서 진행됐다. 아울러 코로나 방역 수칙으로 입장을 못하는 관람객 및 비대면을 원하는 관람객을 위해 유튜브(#고령군 or #고령군관광협의회)에서도 실시간으로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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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 나는 우리동네 이야기꾼다산초등학교는 문화재청이 후원하고 고령군청이 주최하는 『향교 활용 문화재교육 프로그램』을 5학년 학생 68명을 대상으로 지난 10월 12일부터 운영하기 시작해 4주간의 대장정을 거쳐 11월 3일 수업을 마지막으로 마무리했다. 문화재청에서 지역에 있는 문화재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개발해 지역민들의 문화 향유 기회를 늘리고자 시행하는 지역문화재활용사업의 일환으로 고령군청에서 주최한 ‘향교 활용 문화재교육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향교라는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고 학생들이 직접 향교를 배경으로 다양한 형태와 내용의 스토리를 제작해 직접 영상을 촬영하는 교육 내용들로 4주간 진행됐다. 1~2주차에는 향교에 대해 알아보고 영상 촬영 및 편집에 숙달되기 위한 과정을 거쳤으며 3주차에는 직접 고령 향교를 방문해 4~6명으로 이루어진 팀별로 계획했던 스토리에 따라 영상을 촬영했다. 마지막 4주차에는 촬영한 영상을 편집하고 팀별로 발표를 하며 4주간의 활동에 대해 소감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졌다. 다산초등학교는 지난 2018년부터 지역문화재활용사업 교육 프로그램들에 참가해 학생들이 간과하기 쉬운 지역 문화재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최종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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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향교 연조공원서 낭만콘서트 가져郡은 지난 17일 고령향교 연조공원에서 2020년 향교·서원 문화재 활용사업의 일환으로 경신수야 낭만 콘서트를 개최했다. 이번 공연은 진한국악, 국악블루스, 국악재즈 등 다양한 수식어로 불리며 국악의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주는 여성 3인조 국악창작그룹 뮤르(MuRR)가 출연해 피리, 생황, 태평소, 대북, 앙금 등의 전통악기인 국악기와 핸드팬, 카혼, 피아노 등 현대악기 활용해 색다른 퓨전국악공연을 선보였다. 특히 이번 행사는 안전한 관람을 최우선으로 해 코로나19 감염병 확산 예방을 위해 사람간 거리두기를 유지, 모든 출연진 참관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체온을 측정 명부작성 등 방역에도 만전을 기한 가운데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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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의 향토문화유산을 찾아서(3)9. 모현정(慕賢亭) 지정번호 고령군 향토문화유산 유형유산 제9호지 정 일 2012년 08월 01일소 재 지 경북 고령군 우곡면 도진1길 5-4 모현정은 1868년(고종 5) 훼철된 문연서원(文淵書院)에 배향하던 오현인 박택(朴澤), 박정번(朴廷韜), 윤규(尹奎), 박윤(朴潤), 최여설(崔汝契)의 후손이 임시로 위패를 모시고 향사를 지내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죽연 종가의 사랑채로 1803년에 건립되었으며‘문연재(文淵齋)’로 명명되었으나 현재는‘모현정’으로 바뀌었다.건물은 출입문인 평삼문과 모현정 2동이‘二’자형으로 남서향하고, 건물 주위로는 토석담을 쌓아 일곽을 구성했다. 배치는 경사지를 2단으로 터 닦고, 하단에 평삼문, 상단에는 모현정을 앉혔다. 모현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고, 평면은 우측부터 온돌방 정면 1칸×측면 1칸 반, 온돌방 1칸, 마루 1칸 순으로 ‘一’자로 배열하고 전면 전체로 퇴를 둔 좌실우당(左室右堂)형이다. 지붕은 5량 가로 홑처마 팔작에 기와를 이었다. 평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로 평면은 중앙의 대문을 중심으로 도장과 온돌방 1칸씩을‘一’자로 배열했으며, 지붕가구는 간략한 3량가로 홑처마의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매년 음력 3월 초정일(初丁日) 후손들이 석채(釋菜)를 올리고 있다. 10. 후송재(後松齋) 지정번호 고령군 향토문화유산 유형유산 제10호지 정 일 2012년 08월 01일소 재 지 경북 고령군 다산면 벌지로 10 후송재는 송곡마을 입구 905번 지방도가 7번 군도로 연결되는 갈림길 우측 도로변에 위치하며, 봉강(鳳岡) 조상(曺)의 문하생들이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00년에 세운 재실이다.조상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문보(文甫), 호는 봉강(鳳岡)이다. 개항기의 고령 출신 학자로 임재(臨齋) 서찬규(徐贊奎)와 간재(艮齋) 전우(田愚)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다산면 송곡촌에서 삼일계(三一契)를 만들었으며, 강학에 힘썼다. 저술로는『심성이기설(心性理氣設)』과『대학석의(大學釋義)』가 있다.건물의 배치는 산록 경사지를 2단으로 닦아 아랫단에 출입문인 평삼문, 윗단에 후송재를‘二’자형에 서북향으로 앉혔다. 후송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평면은 2칸 온돌방에 마루 1칸을‘一’자로 배열하고, 전면 전체로는 퇴를 둔 좌실 우당(左室右堂)형이다. 지붕가구는 간략한 3량가로 홑처마 팔작에 한식기와를 이었다. 대청에는 후송재(後松齋) 현판과 후송재명(後松齋銘), 후송재기(後松齋記) 등 기판 2매가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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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환 군수, 10년간 가야문화권 100년 밑그림 그려가야문화권지역발전 시장·군수협의회(의장 : 곽용환 고령군수)는 지난 15일 전남 여수시에서 제25차 정례회의를 가졌다. 협의회 의장인 곽용환 군수는 인사말에서 “2021년도는 협의회 정례행사와 신규 사업들의 활발한 추진으로 영·호남의 통합과 단합된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며 “역사문화권 정비 시행계획 수립과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 국정과제의 추진 등 협의회 공통사업들을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용환 군수는 10년간 가야문화권시장군수협의회 의장으로서 26개 시군의 중심축으로 활동했고, 특히 역사문화권정비특별법 제정과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 대구-광주 달빛내륙철도 건설 등의 국정과제 선정을 위해 노력했으며, 지산동 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추진과 대가야 궁성지 발굴·정비, 대가야 대종 및 종각 건립, 현 페스티벌 개최, 가야금을 활용한 세계적 현악기 도시들과 국제네트워크 구축 등 대가야의 후예로서의 자긍심 고취와 위상을 높여 왔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는 가야문화권 11개 재난지역 수해복구성금 지원과 2021년 협의회 행사 선정 등을 논의했고, 가야문화권 상생발전과 연계전략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연구용역 최종보고회를 개최했다.한편, 고령군 제안으로 2005년 10개 시군으로 발족한 가야문화권협의회는 경남 진주시가 제25차 회의에 참석해 가입함으로서 영호남 5개 광역도시 26개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하는 거대 행정협의회로 거듭나게 됐다. 가야문화를 통한 영호남간 지역감정 해소, 공존과 상생의 국민 대통합 실현 및 동반자적 공존 발전방안을 모색하고 동일권역 가야역사문화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목적으로 결성했다. 또 지역자원을 활용한 영호남 전역 공동발전과 특색 있는 통합브랜드 창출도 모색했다. 그 후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돼 ‘가야문화권 지역 관광자원 상생발전 연계전략 수립 용역’ 등에 탄력을 받고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가야문화권협의회는 지난 10년간 곽용환 군수가 협의회를 이끌며 가야문화권 100년의 밑그림을 그렸는데, 이번에 허성곤 김해시장에게 의장을 넘겼다. 최종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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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의 향토문화유산을 찾아서(2)5. 매림서원(梅林書院) 지정번호 고령군 향토문화유산 유형유산 제5호지 정 일 2012년 08월 01일소 재 지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송림2길 54-7 매림서원은 쌍림면 송림리 서원마을에 있는 한계 오선기, 매헌 곽수강을 배향한 조선 후기 서원이다. 현풍곽씨(玄風郭氏)와 고창오씨(高敞吳氏) 두 문중에서음력 중정(中丁)에 향사하고 있다.오선기(吳善基)의 자는 경부(慶夫), 호는 한계(寒溪)이고 본관은 고창(高敞)이다. 경상북도 고령에서 출생하였다. 장용우(張龍遇)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산림처사로 후학 양성에 힘썼던 인물이다. 저서로는『한계집(寒溪集)』이 있다. 곽수강(郭壽岡)의 자는 진옹(鎭翁), 호는 매헌(梅軒)이고 본관은 현풍(玄風)이며 고령에서 거주하였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글 솜씨가 뛰어났으며 1619년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저서로는『매헌집(梅軒集)』이 있다.매림서원은 오선기와 곽수강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유림에서 1707년(숙종33) 쌍림면 매촌리에 건립하였으나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이후 매림재(梅林齋)로 이어오다 1984년 다시 중수하면서 서원으로 복원되었다.매림서원은 크게 사당, 강당, 동·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입구에 풍우루를 비롯하여 서원 내에 비각과 육각형의 정자가 배치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입구를 들어서면 서당이 있고 서당의 양쪽에는 동재와 서재가 뒤쪽에 사당이 위치한다.사당인 숭경사(崇敬祠)는 강당의 후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지붕 건물이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5량 형식의 가구 구조이다. 강당인 중정당(中正堂)은 2칸의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2칸씩 온돌방을 놓았으며 건물의 전면에는 반 칸의 툇간을 구성하고 마루를 배치하였다. 동·서재는 온돌방 강당 전면에 위치하며 각각 4칸 규모로 되어 있다.서원 내에는 책판과 현판 및 기판, 비석 1기 등이 남아 있다. 책판에는『매헌선생문집(梅軒先生文集)』,『예곡선생문집(禮谷先生文集)』,『한계선생문집(寒溪先生文集)』등이 소장되어 있다. 책판 세부 목록은『경북지역의 목판자료』2에 수록되어 있다. 6. 대곡사(용화재) 大谷祠(龍華齋) 지정번호 고령군 향토문화유산 유형유산 제6호지 정 일 2012년 08월 01일소 재 지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큰골길 240-3 용화재는 지산리 큰골마을 위쪽에 위치하며 삼국통일의 주역인 신라 김유신(金庾信, 595∼673, 진평왕 17∼문무왕 13)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된 사우이다.건물은 모두 2동으로 재실인 용화재(龍華齋)와 김유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대곡사(大谷祠)로 이루어져 있다. 연혁은 처음 대곡리에 거주하던 후손인 김치수(金致洙)가 1904년 경주에서 영정을 모셔와 자신이 거주하는 집 뒤편에 영정각을 건립하고 영정을 안치하여 치제(致祭)하였는데, 1928년 봄 후손 용주(容輳)에게 부탁하여 영정기를 찬하였다. 이후 1947년 3월 후손 김용욱(金容旭) 등이 사우와 강당 및 홍문 건축과 관련한 통문을 발송하고, 동년 4월 2일 입주(立柱), 3일 상량하였다. 1950년 2월 손후익(孫厚翼)이 흥무왕영정각강당상량문(興武王影幀閣講堂上樑文)을 찬하였고, 1952년 3월 후손 용욱(容旭)이 용화재기(龍華齋記)를 찬하였다.건물 구성은 솟을삼문, 대곡사, 용화재 3동으로 일곽을 이루고 있다. 배치는 경사지를 2단으로 조성한 대지에 출입문인 솟을삼문과 북동향하는 용화재를‘ㄱ’자형으로 하단에 배치하고, 용화재 우측의 한 단 높게 조성한 상단에 대곡사가 남동향하고 있다.대곡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이고, 평면은 3칸 내부 전체를 통칸으로 처리하고 바닥은 장마루를 깔아 마감했다. 내부 어칸의 중앙 뒷벽에는 영정함과 제상이 놓여있다. 지붕가구는 간략한 3량가에 겹처마 맞배로 한식기와를 이었다.용화재는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에 평면은 중앙의 2칸통 대청을 중심으로그 좌우측에 온돌방 1칸씩을 들이고 전면 전체에 퇴를 둔 중당협실형이다. 지붕가구는 간략한 3량가로 홑처마 팔작에 한식기와를 이었다. 7. 지지재(知知齋) 지정번호 고령군 향토문화유산 유형유산 제7호지 정 일 2012년 08월 01일소 재 지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벌지2길 44-3 지지재는 벌지마을 뒤편의 야산 중턱에 위치한 경주김씨들의 문중 재실로 규모가 방대하다. 조선 말기인 1870년 김씨 8형제가 서로의 뜻을 모아 조상의 덕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한 사당의 형식으로 지은 건물이다.건물 구성은 지지재, 주사, 평삼문 3동으로 구성된 재실영역과 그 뒤편에 떨어져 배치된 사당영역이 별곽을 이루고 있다. 재실영역은 출입문인 사주문과 그 뒤편에 지지재가 일직선상으로 배치하고, 지지재 우측으로는 주사가 위치한다.지지재는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로 평면은 2칸통 대청을 중심으로 그 좌측에 온돌방 1칸, 좌측으로 온돌방 2칸을 배열하고 전면 전체로는 우물마루를 깐 퇴를 둔 중당협실형이다. 지붕가구는 건실한 5량가에 홑처마 팔작에 기와를 이었다.건물 내부에는‘지지재(知知齋)’, ‘누산서실(樓山書實)’등의 현판 2개와‘지지재 중건기(知知齋重建記)’, ‘지지재기(知知齋記)’등 기판 2매가 남아 있다.주사는 지지재보다 낮게 기단을 조성해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를 앉혔다. 평면은 2칸 온돌방에 마루 1칸을‘一’자형으로 배열하고, 전면에 퇴를 둔 좌실우당(左室右堂)형이다. 지붕가구는 홑처마 5량가에 일식기와를 이은 팔작집이다.사당은 지지재 일곽에서 좌측으로 별도로 돌각담을 쌓아 돌린 일곽에 출입문인 사주문과‘二’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이고, 지붕가구는 3량가에 겹처마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8. 남와구거(南窩舊居) 지정번호 고령군 향토문화유산 유형유산 제8호지 정 일 2012년 08월 01일소 재 지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3길 17 남와구거는 학암 박정번(朴廷韜)의 7세손인 박민국(朴敏國)이 서재 겸 사랑채로 1815년 건립하였으며, 도원정사 또는 불휴당으로 불린다.남와구거에는 안채, 사랑채, 사당, 별채, 안대문, 솟을대문 등이 배치되어 있다.건물 배치는 솟을삼문을 들어서면 북편에 사랑채와 사당이 나란히 남향하고, 사랑채 서쪽으로는 중채와 안대문이 축선을 약간 달리하며 남서향한다. 안대문을들어서면 안채가 역시 전방의 건물들과 다른 축선으로 남서향한다.사랑채는 솟을대문보다 한단 높게 조성한 대지에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다.평면구성은 2칸통 온돌방에 마루 1칸을 두고 전면 전체로는 마루를 깐 퇴를 배열한‘一’자형이다. 지붕가구는 건실한 5량가에 홑처마 팔작에 기와를 이었다. 사당은 정면 2칸, 측면 1칸 반 규모로 내부 뒷벽에는 중앙으로 위패함과 교의, 상이 차례로 놓여 있다.안채는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이며, 평면은 대청을 중심으로 그 우측에 정지2칸과 안방 1칸, 대청 좌측으로는 건너방 1칸을‘一’자형으로 배열했다. 지붕가구는 3량가이고, 지붕은 건넌방 좌측 퇴에는 각기 가적지붕을 달아내어 맞배+가적지붕이라는 독특한 지붕형태를 취했다. 중채는 초가 3칸을 근년에 기와집으로 지은 것이고, 입구에는 솟을삼문이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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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용환 군수, 10년간 가야문화권 100년 밑그림 그려가야문화권지역발전 시장·군수협의회(의장 : 곽용환 고령군수)는 지난 15일 전남 여수시에서 제25차 정례회의를 가졌다. 협의회 의장인 곽용환 군수는 인사말에서 “2021년도는 협의회 정례행사와 신규 사업들의 활발한 추진으로 영·호남의 통합과 단합된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며 “역사문화권 정비 시행계획 수립과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 국정과제의 추진 등 협의회 공통사업들을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용환 군수는 10년간 가야문화권시장군수협의회 의장으로서 26개 시군의 중심축으로 활동했고, 특히 역사문화권정비특별법 제정과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 대구-광주 달빛내륙철도 건설 등의 국정과제 선정을 위해 노력했으며, 지산동 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추진과 대가야 궁성지 발굴·정비, 대가야 대종 및 종각 건립, 현 페스티벌 개최, 가야금을 활용한 세계적 현악기 도시들과 국제네트워크 구축 등 대가야의 후예로서의 자긍심 고취와 위상을 높여 왔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는 가야문화권 11개 재난지역 수해복구성금 지원과 2021년 협의회 행사 선정 등을 논의했고, 가야문화권 상생발전과 연계전략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연구용역 최종보고회를 개최했다.한편, 고령군 제안으로 2005년 10개 시군으로 발족한 가야문화권협의회는 경남 진주시가 제25차 회의에 참석해 가입함으로서 영호남 5개 광역도시 26개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하는 거대 행정협의회로 거듭나게 됐다. 가야문화를 통한 영호남간 지역감정 해소, 공존과 상생의 국민 대통합 실현 및 동반자적 공존 발전방안을 모색하고 동일권역 가야역사문화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목적으로 결성했다. 또 지역자원을 활용한 영호남 전역 공동발전과 특색 있는 통합브랜드 창출도 모색했다. 그 후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돼 ‘가야문화권 지역 관광자원 상생발전 연계전략 수립 용역’ 등에 탄력을 받고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가야문화권협의회는 지난 10년간 곽용환 군수가 협의회를 이끌며 가야문화권 100년의 밑그림을 그렸는데, 이번에 허성곤 김해시장에게 의장을 넘겼다. 최종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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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의 향토문화유산을 찾아서(1)1. 봉평리 암각화(鳳坪里岩刻畵) 지정번호 고령군 향토문화유산 유형유산 제1호지 정 일 2012년 08월 01일소 재 지 경북 고령군 운수면 봉평리 산102시 대 청동기 봉평리에서 대평리로 향하는 중간 지점에 있는 순평마을 동편에 형성된 해발 220m 야산의 서쪽 능선 사면 산록에 암각화가 위치하고 있다.암각화가 새겨진 전체 바위면은 450×210cm 정도로 최하단부는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비스듬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앞쪽 바닥에도 일부 암반이 노출돼 있다. 현재 암각화는 바위면 하부의 280×90cm 정도되는 범위에서만 확인되는데, 원래는 바위 전면에 새겨져 있었지만 상부는 풍화작용으로 박리된 것으로 추정된다.암각은 바닥면에서 160cm 정도 위에 있는 바위면 중앙 상단부에 지름 10cm, 깊이 4cm 정도의 바위구멍이 한 개 파여 있다. 그 아래인 바닥으로부터 90cm정도 되는 바위면에는 대략 열다섯 개 정도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제작 방식은 폭 1cm 내외, 깊이 2~3mm의 규모로 바위면을 쪼아 홈을 낸 다음 여러 차례 문질러 음각선으로 형태를 표현했다.바위면 오른쪽에는 마제석검형(磨製石劍形) 암각이 3개 정도 확인되는데, 모두 돌칼이 아래로 향한 모양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중 1점은 검신과 손잡이의 형태가 세형동검(細形銅劍)과 유사하다. 그리고 왼쪽에는 톱니 모양의 기하문이 새겨져 있으며, 그 위쪽에는 말굽형으로 보이는 암각이 새겨져 있다. 바위면의 왼쪽에는 비파형동모(琵琶形銅棠)의 암각이 아래로 향하게 표현돼 있으며, 역시 아래를 향하고 있는 무경식석촉(無頸式石鏃)도 새겨져 있다. 그 외 가운데의 성혈을 중심으로 한 겹의 원을 둘러놓은 원형암각이 4~5점 정도가 확인된다. 그와 함께 바위면 전체에서 사선을 그어놓은 선각과 20여 개 내외의 쪼은 흔적이 곳곳에 있다. 한편 이곳에서 남쪽으로 10m 정도 떨어진 산록의 수직 바위면 하단에는 세로로 길쭉한 홈을 파놓은 여성성기형의 암각이 확인된다.봉평리 암각화의 발견은 암각화의 제작 시기와 관련한 실마리를 확보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암각화 앞면의 퇴적층에서는 석기박편 포함층이 확인된 바 있고, 전면에 펼쳐진 봉평들에는 다수의 지석묘와 대규모 석기제작장 등이 분포하고 있다. 더불어 그림의 주요 모티브가 석검, 비파형동모, 세형동검 등으로 청동기시대 유물이 중심을 이룬다.이러한 점을 종합해 보면 이 암각화는 봉평들 일대에 청동기시대 대규모 석기제작장을 운영했던 집단이 석기 제작과 관련한 제의를 행하면서 조성한 유적이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2. 나씨 할매릉(羅氏祖母陵) 지정번호 고령군 향토문화유산 유형유산 제2호지 정 일 2012년 08월 01일소 재 지 경북 고령군 다산면 노곡리 산25일대 「나씨 할매무덤」설화는 다산면 노곡리 답곡마을에 전승되는 나씨 할매[소저시]의 인물담이자, 나씨 할매무덤의 지명유래담이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0년 11월 4일 경북 고령군 다산면 노곡리 답곡마을 주민 민병태[남, 84]에게서 채록한 것이라고 한다.그 내용을 보면, 궁궐에 소저시라는 궁녀가 살고 있었다. 궁녀는 원래 결혼을하지 못하므로 소저시가 늙자 자신의 무덤 자리를 궁에서 연을 날린 후 연이 내려앉는 자리로 정하기로 했다. 소저시는 연을 날렸고, 이 연이 노곡리 뒷산의 나무에 걸렸으므로 그 나무 주변에 무덤을 만들었다. 소저시는 산 채로 묻혔는데, 이 무덤이 생긴 후에 한동안 이곳에서 쌀뜨물이 흘러 나왔다고 한다. 궁에 있었던 사람답게 무덤 안에 여러 유물도 함께 묻었는데, 안타깝게도 유물은 도난당했다고 한다. 지금도 이 무덤 앞에서 빌면 복을 받는다고 해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연이 걸렸던 나무도 마을 사람들이 신성시 여겨 정월 대보름이면 이곳에서 제를 지낸다고 한다.「나씨 할매무덤」의 주요 모티프는 ‘연으로 정한 무덤자리’, ‘쌀뜨물이 나온 소저시 무덤’, ‘신목이 된 연이 걸린 나무’ 등이다. 이 이야기는 보통 사람의 무덤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더 큰 소저시라는 궁녀의 무덤에 관한 인물설화이며, 쌀뜨물이 흘러 나왔다는 나씨 할매 [소저시] 무덤에 관한 내력을 담고 있으므로 지명유래설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덤 앞에서 정성을 드리면 복을 받는다거나 연이 걸린 나무가 신목이 됐다는 점에서 보면 기복설화와도 관련이 있다. 현재 정비돼 있는데, 이 무덤을 삼국시대로 추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변현황으로미루어 보면 조선시대 이후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 3. 미륵불상(彌勒佛像) 지정번호 고령군 향토문화유산 유형유산 제3호지 정 일 2012년 08월 01일소 재 지 경북 고령군 다산면 곽촌리 산29-3 미륵봉(194m)에서 상곡마을 쪽으로 흘러내린 미륵골의 산중턱에 있는 상곡리 절터 내에 불상이 위치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불상을 미륵부처라고 부르면서 신성시하고 있다. 주변 환경으로 보아 조그마한 암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주변에는 고려~조선시대의 기와편과 청자편, 백자편 등이 흩어져 있다. 전체 높이는 150cm 정도이고, 하나의 바위를 이용해서 조각했는데, 얼굴과 몸체는 원래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마모돼 있다. 4. 대분(大墳) 지정번호 고령군 향토문화유산 유형유산 제4호지 정 일 2012년 08월 01일소 재 지 경북 고령군 개진면 오사리 산81 일대 광도마을 북쪽으로 광도 앞골이 북쪽에서 작골과 불당골로 갈라지는 지점에서 111 중앙으로 길게 뻗어 내린 능선 말단부에 남향해 대분 3기가 위치하고 있다. 북쪽 상부로부터 남쪽 아래로 정부인 나씨묘(貞夫人羅氏墓), 박형의 묘(正憲大夫知訓練院事朴公炯之墓), 박형의 아들인 박계조와 그의 부인 합장묘(通訓大夫行梁山郡守朴淑夫人全州柳氏合葬之墓)가 일렬로 자리 잡고 있다.박형(朴炯)은 세종 때 무과에 등재한 이후 첨지중추원사, 동지중추원사, 도진무, 행첨지중추원사 겸 경상우도도절제사, 경상좌도수군절도사, 훈련원사를 지냈고, 이시애의 난 때에 원종공신이 됐다. 아들인 박계조(1465~1525)는 진주판관, 경산현령을 역임할 때 삼포왜란을 토벌한 공을 세워 양산군수로 승차했는데, 박계조란 이름은 부친이 나라를 위해 그 직무를 다했기에 세조가 사명(賜名)한 것이라 한다.가장 북쪽 상부에 위치한 정부인 나씨묘는 2단으로 석축을 쌓아 터를 만든 뒤 상단에 봉분과 묘상비, 상석을 배치하고, 하단에는 석주 한쌍을 배열했다. 박형묘는 나씨묘에서 아래로 6m 가량 이격해 3단으로 터를 닦고, 상단에 봉분과 그 앞에 묘상비와 상석을 차례로 놓았다. 중단에는 석주 한쌍, 하단에는 문인석 한쌍을 차례로 배치했다. 박형묘에서 아래로 6m 정도 떨어져 위치한 박계조와 부인합장묘는 석축을 2단으로 구성해 터를 조성한 뒤, 상단에 봉분과 상석, 묘상비, 하단에 묘비 2개씩을 좌우로 대칭 배치했다. 특히 상단의 좌측 묘비는 귀부, 비신, 이수 등을 갖춘 것으로 조각수법이 매우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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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고대·중세·근대 문명사 발간道는 2017년 ‘낙동강 고대 문명사’와 2019년 ‘낙동강 중세 문명사’ 발간에 이어 올해 ‘낙동강 근대 문명사’와 ‘낙동강 고대·중세·근대 문명사 종합편’을 발간하고 다년간에 걸쳐 진행된 낙동강 문명사 연구사업을 마무리했다.낙동강 문명사 연구사업은 영남 문화의 산실이자 민족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낙동강의 역사와 문화, 강마을 사람들의 삶의 자료를 현장에서 조사·연구해 낙동강의 문명적 가치를 재발견하기 위해 경북도가 대구경북학회 책임연구원 박승희 교수를 비롯한 12명의 분야별 연구위원들을 통해 2016년 8월부터 올해 8월까지 4년간의 긴 여정으로 진행해 왔다. 올해 진행한 ‘낙동강 근대 문명사’ 연구는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낙동강이 어떤 비극의 역사와 이야기를 품게 됐는지를 탐방하고 한국 산업화의 중심지로서 낙동강 유역의 문화와 산업화 이야기를 통해 낙동강에 대한 새롭고 다양한 콘텐츠를 탐색하고 제안해 현재적 가치를 재구성한 것이 특별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또한 ‘낙동강 고대·중세·근대 문명사 종합편’의 발간을 통해 고대부터 중세, 근대 문명사에 이르기까지 낙동강의 역사와 스토리, 문화를 한 권으로 요약·정리함으로써 낙동강을 중심으로 한 경북의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집대성하는 성과를 거뒀다.‘낙동강 근대 문명사’와 ‘낙동강 고대·중세·근대 문명사 종합편’은 경북지역 시·군 및 공공도서관, 대학교 도서관 등을 비롯해 전국 광역 지자체와 시·도 대표 도서관, 국립대 도서관 등에 배부될 예정이다.